여대생과 축구. 뭔가 짝이 잘 맞지 않은 단어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를 가장 싫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와 축구는 그동안 상극 관계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월드컵의 영향도 있고, 박지성, 기성용, 이청용 등 축구 스타들에 대한 관심 증가도 한몫 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축구를 직접 즐기는 여성도 많아졌습니다. 선진국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분명히 눈에 띌 정도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11월 첫 주말, 경기도 가평에서 여자 축구를 위한 의미 있는 축구 대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K리그컵 여자대학클럽 축구리그가 개최된 것입니다. 이 대회는 지난해에 이어 2회째 숙명여대와 함께 프로축구연맹에서 직접 주최, 주관한 대회로, 12개 대학 여대생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 선수들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습니다. 여자 축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여성팬들의 K리그에 대한 관심 확대를 위해 개최된 대회이기도 한데 일반 축구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첫 대회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올해도 이 대회를 열게 됐습니다.

수준 높은 대회, 인상적인 경기력-열정 눈길 사로잡았다

▲ 치열한 볼 다툼 장면들.
여자 아마추어 축구라고 해서 수준 낮은 축구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선수들은 대회를 열기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훈련해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열을 올립니다. 학교와 팀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선수들은 최대한 자기 기량을 펼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때로는 남자 친구 또는 같은 과 남자 학우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도 교수나 전문 코치 지도자의 지도를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선수들의 대회에 임하는 자세, 각오는 대단합니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패스플레이, 선수들의 개인기는 정말 생각했던 수준 이상이었습니다. 빠르게 이어지는 원터치 패스,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을 정확하게 꽂아 넣는 킥력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들이다보니 실수도 많았고, 프로 경기에서 힘든 장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주심을 본 심판들 대부분 "정말 잘 한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을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축구 자체를 즐긴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실 이 선수들에게 힘든 점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대회가 이틀 동안 치러지면서 첫날은 104년 만의 '11월 무더위'와 둘째 날은 폭우와 싸워야 했습니다. 일정상 첫날의 경우, 하루에 2경기씩 치러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조금은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어느 누구 하나 찡그리지 않고 축구 자체를 즐겼습니다. 우승하면 물론 더욱 좋겠지만 축구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무엇보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축구 선수이기 전에 여대생들답게 톡톡 튀고 발랄한 골 세레모니는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대 선수와 경기를 치르다 부딪쳐 다치거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서로 격려해주고 배려해주는 모습은 훈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김병지-최진철의 의미 있는 멘토, 돋보였다

▲ 여대생 선수들과 함께 한 김병지, 최진철.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열정과 성의를 다해 많은 여대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러한 여대생들의 순수한 열정에 걸맞게 프로축구연맹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K리그에 실제 뛰는 심판진 12명이 참가해 대회 권위를 높였습니다. 여기에 K리그 레전드 멘토가 나서 12개 팀 전체에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대회 둘째 날인 6일 오전, K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자랑하는 '레전드' 김병지(경남 FC)와 성실한 중앙수비수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또 다른 '레전드' 최진철(강원 FC) 코치가 나타나 선수들에게 개인기술 등을 가르치고, 선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두 멘토는 성의를 다 해서 선수들에 축구에서 중요한 기본 기량 등을 알려줬고, 선수들은 이를 하나하나 귀담아 듣고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승부차기 끝 숙명여대가 대회 첫 우승

결국 이 대회 우승팀은 숙명여대가 됐습니다. 숙명여대는 조별 예선에서 3전 전승으로 올라온 중앙대를 결승전에서 만나 0-0 무승부를 거둔 뒤 승부차기에서 4-3 승리를 거두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결승에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던 숙명여대는 탄탄한 조직력과 특유의 끈기를 앞세워 지난해 한을 풀고 첫 정상에 올랐습니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들은 크게 기뻐했고, 잠시 아쉬워했던 중앙대 선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격려하며 환하게 웃으면서 대회를 마쳤습니다.

▲ 경기를 앞두고 나란히 서있는 한국체대, 국민대 여대생 선수들(좌) 우승이 확정된 뒤 기뻐하는 숙명여대 선수들. 아쉬워하는 중앙대 선수들(우)
우승팀 못지않게 주목받은 그녀들

우승팀이 주목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목받은 팀들도 많았습니다. 고려대는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해 대회에 출전, 비상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호주, 독일, 미국에서 온 세 여대생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 한국에 유학와서도 축구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이었습니다. 비록 고려대는 예선에서 아쉽게 3전 전패를 당해 탈락했지만 이들은 이곳에서의 추억이 뜻 깊다며 환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또 통산 대회 첫 골을 넣기 위한 한국외대의 '무한도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국외대는 지난해 무득점 13실점으로 3전 전패를 당해 올해만큼은 꼭 한 골을 넣겠다며 의욕적으로 대회에 임했습니다. 중앙대전에서는 상대 선수의 실수로 간접프리킥 기회를 얻어 통산 첫 골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또 3전 전패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과 이들을 도운 남자 매니저, 학우들은 큰 부상 없이 마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환하게 웃고 대회를 마쳤습니다. 대학생다운 패기와 또 다른 꿈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경기 대진상 예선 2경기를 잇달아 치렀음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강남대, 1승 2무로 아쉽게 예선 탈락했지만 마지막에 춤을 추며 '하하호호' 웃으며 대회를 마친 지난해 우승팀 경희대 팀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저마다 개성 넘치고 순수한 열정이 있는 모습들 덕분에 궂은 날씨에도 계속 웃음 짓게 하고 흐뭇하게 했습니다.

더 순수하면서도 화려한 '뷰티풀 풋볼'을 위하여

그라운드에서 여대생 선수들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저 축구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실제로 하게 됐다는 이들은 어느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스스로 발산해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어쩌면 다시 하지도 못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열정을 다 바치는 이들의 땀과 눈물은 훗날 이들 개인에게도 많은 추억과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여자 축구의 저변 확대, 나아가 여성팬들의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 증대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순수한 땀방울은 화려한 의상을 하고 워킹을 하는 여성들보다도 더 멋지고 아름다워보였습니다. 더 순수하면서도 화려해지는 '뷰티풀 풋볼'을 위한 이 여대생 축구 선수들의 또 다른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