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2011 프로야구 MVP 및 신인왕 시상식에서 신인왕은 91표 중 65표를 차지한 삼성 배영섭에게 돌아갔습니다. 신인왕 후보였던 LG 임찬규는 26표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LG는 1997년 이병규 이후 14년 만에 신인왕 타이틀을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습니다.

배영섭은 340타수 100안타로 타율 2할9푼4리 51득점 24타점 33도루를, 임찬규는 82.2이닝을 소화하며 9승 6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4.46을 기록했습니다. 배영섭이 시즌 후반 부상으로 이탈해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으며 임찬규가 10승을 채우지 못했다는 약점은 비슷합니다.

두 선수의 수상 여부가 갈린 원인은 팀 성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은 페넌트 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SK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반면, LG는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의 불명예 신기록을 작성하며 6위에 그쳤습니다.

특히 지난 9월 왼손 골절 부상으로 1군에서 이탈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던 배영섭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극적으로 합류해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2차전에는 2타점 결승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신인왕 수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MVP와 신인왕 시상식을 페넌트 레이스 종료 직후가 아니라 포스트 시즌까지 치른 뒤에 거행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와는 별개로 임찬규가 신인왕 수상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시즌 막판까지 혹사를 당한 것은 어처구니없습니다.

임찬규는 시즌 초 패전 처리로 출발해 마무리를 거쳐 롱 릴리프, 선발까지 투수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보직을 한 시즌 동안에 거쳤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도 감당하기 힘든 보직 변경이라는 무거운 짐을 박종훈 감독은 19세의 고졸 신인 선수에게 여러 차례 지운 것입니다. 패전 처리에서 부담 없이 호투하던 임찬규는 마무리로 전환된 뒤 6월 19일 잠실 SK전에서 4연속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등 5실점하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7월 31일 넥센에서 송신영이 마무리로 영입된 뒤 임찬규는 롱 릴리프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팀 타선 침묵이 2개월 이상 이어지며 8월 이후 LG의 4강행이 사실상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훈 감독은 투수진 혹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임찬규는 이닝과 무관하게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해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혹사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혹사에 지친 임찬규는 구위와 제구가 모두 저하되어 시즌 종반까지 유지해온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9월 18일 광주 KIA전에서 차일목에게 끝내기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0.1이닝 동안 4실점한 임찬규의 평균자책점은 3점대로 치솟았으며 이후 2경기에서도 중간에 등판해 모두 실점했습니다.

▲ 신인왕 수상과 10승 달성을 목표로 10월 6일 잠실 삼성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4.1이닝 7피안타 6실점(5자책)으로 강판되는 임찬규
임찬규가 9승에 머문 가운데 중간에서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자 박종훈 감독은 10월의 남은 2경기에서 10승 달성을 통한 신인왕 수상을 위해 선발 등판시킬 것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해 동계 훈련에서도 선발 투수로 훈련받지 않았으며 선발 등판 경험이 전무한 데다 혹사에 지친 임찬규가 선발로 돌아선다고 호투할 리는 만무했습니다. 결국 임찬규는 10월 2경기에 선발 등판해 매 경기 5실점 이상을 기록하며 모두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2점대의 평균자책점은 결국 4.46까지 폭등한 채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시즌 막판 혹사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임찬규는 어제 결국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박종훈 감독의 임찬규 신인왕 밀어주기는 팀 성적에 대한 집착으로 내년 시즌에도 LG의 감독직을 유지하기 위해 임찬규를 혹사한 것을 면피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의심스럽습니다. 만 19세로 아직 육체적 성장이 마무리되지 않은 어린 선수를 혹사한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생애 유일한 기회에서 신인왕을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내년 시즌 과연 임찬규가 올해 초반과 같은 강력한 구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정재복, 이동현, 정찬헌 등 LG의 선배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혹사는 혹사대로 당하고 팀 성적은 부진했으며 그들이 수술대에 올라 긴 재활을 거치며 이탈해 투수진이 더욱 허약해진 LG가 하위권을 맴돈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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