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깜짝 재발견외에도, 그것보다 훨씬 더 주목해야 할 구도의 변화가 눈에 띱니다. 강호동의 잠정은퇴 선언 이후 가장 큰 관심사였던, 누가 1박2일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이죠. 1박2일의 1인자 자리는 진행 정리를 하는 포지션이 아닙니다. 강호동이 있었을 당시에도 그런 일정 조정이나 흐름의 정리는 실질적인 메인MC 출연자급 제작자 나영석PD의 몫이었으니까요. 이 프로그램의 1인자란 그런 나영석 PD와 제작진에 맞서는 멤버들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웃음을 위한 소재들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을 합쳐서 또 다른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동생들을 아우르는 큰형이자, 끊임없이 소란을 만드는 사고뭉치, 그리고 교묘하고 능수능란하게 제작진과 ‘밀당’을 하는 협상자. 그것이 1박2일의 1인자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제작진과 멤버들 사이를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분량까지 확보해야 하는 높은 난이도의 작업이죠. 여행이라는, 그리고 제작진과 함께 어우러지는 1박2일의 독특한 포맷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1인자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강호동의 부재를 두고 걱정이 많았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영민함을 과연 동생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동안 어떻게 방송 분량을 만들 것인지를 두고, 이수근은 작은방 올림픽을 만들고 진행을 맡으면서 분위기를 업시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단련된 상황 만들기의 장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죠. 그리고 그런 소란스러움이 가신 뒤에 조용히 나영석PD와 함께 저녁 취침을 위한 복불복을 진행합니다. 그것도 멤버들의 특성을 면밀하게 살핀, 관찰력에 의지하면서 그들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재확인시키는 적절한 포인트였죠. 상황은 자신이 만들지만 그 초점은 멤버들에게 골고루 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물러섬이었어요.
이것이 강호동과 그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강호동의 에너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그 에너지로 잘나가는 멤버의 능력을 배가시키며 웃음을 폭발시킵니다. 황제 이승기와 앞잡이 이수근, 천재 은지원 모두 그런 능력에 힘입고 탄생한 케릭터이죠. 하지만 그 에너지를 올라타지 못하고, 도리어 삼켜져 버리는 김종민과 엄태웅은 병풍처럼 뒤로 물러서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수근은 시끌벅적한 상황만을 만들고 다른 멤버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입니다. 마치 서커스의 단장이 단원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분위기를 업시키고 뒤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김종민과 엄태웅의 재발견과 부활은 분명 이수근식 진행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진행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