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전임자들의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지는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

피해자는 17일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서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혔다고 생각한다”며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상처를 주었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커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입을 땠다.

17일 열린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 (사진=한국여성의전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에 이어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과에 대해 피해자는 "진정성이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낙연 위원장과 박영선 후보는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 짚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당헌을 바꿔 서울시장 후보를 냈으며, 후보 선거 캠프에는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많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선거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업적에 박수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낀다”며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진정한 사과를 위해 박 후보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피해자는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됐다. 사과를 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민주당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저를 피해호소인이라 명명했던 의원들이 직접 사과하도록 박 후보가 따끔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고, 당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월 남인순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분으로 인한 저의 상처와 사회적 손실은 회복하기 불가능한 지경”이라며 “저는 그분께서 반드시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서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 민주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남인순, 진선미 의원은 박영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고민정 의원은 대변인을 맡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직후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인순 의원은 성추행 고소 계획을 박 전 서울시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가 나온 뒤 사과문을 올린 바 있다. (▶관련기사 : '박원순 피소 유출' 남인순, 늦은 사과문 올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이유를 되새겼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는 “성폭력이 일어난 환경을 만든 민주당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보궐선거 이유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며 선거 쟁점을 부동산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부동산 문제가 중요하지만 이번 선거의 중심이 되어선 안 된다. 성폭력과 무책임으로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부동산 공약으로 회복하겠냐”며 "정치권은 이번 선거의 본질인 성폭력 사건 해결과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강조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연구활동가는 “피해자가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선거가 돼야 한다”며 “여성이 존중받는 서울시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보궐선거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당은 후보를 냄으로써 이를 잊게 했다”고 말했다.

권 활동가는 “우상호 의원은 ‘내가 박원순이고 박원순이 나’라며 박 전 시장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전 의원은 '박원순의 족적이 눈부시다'고 했다. 박영선 후보는 피해호소인이라고 칭한 이들은 캠프에 포함해 모두를 안고 갔다”고 지적했다.

권 활동가는 “우리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정책을 원하고 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책 대안이 나와야 한다”며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성평등 조직문화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전 직장동료인 이대호 씨는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피해자가 겪은 일이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고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위해 노력할 것 ▲조직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노력해줄 것 등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을 고발한 지 오늘로 252일 째다. 그동안 정치가 한 일은 무엇이냐”며 “보궐선거가 왜 치러지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정치는 용기 낸 여성 노동자의 일상을 되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더이상 차별받지 않는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무엇을 바꿔왔나 회의가 든다”며 ‘피해호소인’, ‘성희롱’을 ‘피해자’와 ‘성적 괴롭힘’으로 바꿔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인정한 인권위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다. 오는 19일 서울시청 출입기자였던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쓴 책 ‘비극의 탄생’이 출간된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인권위에서 인정받은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이 담겼다고 들었다”며 “인권위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정 받은 피해사실과 개인이 저서에 쓴 주장의 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분별력 있는 이들은 반드시 제대로 된 시선으로 그 책을 평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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