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KBS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KBS 근처 술자리에서 오간 대화란다. 한 후배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KBS)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KBS 기자 수백 명이 주진우 한 명을 못 당하는 게 정상적인 거예요?” <나는 꼼수다>에 나오는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내곡동 사건’을 특종 보도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다.

술자리에서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가 왜 ‘주진우’ 하나를 당하지 못 하는가” 그 ‘이유’로 옮겨갔을 것이다. 술자리의 이야기는 혈관을 퍼져가는 술기운과 함께 논쟁으로 번졌을 것이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들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귀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숙취로 속이 쓰리고 머리가 몽롱한 아침 다들 각자의 출입처로, 취재현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KBS기자들이 능력이 없어서? 정권이 KBS를 먹어버려서? 김인규 사장이 못하게 해서? 먼저 우리가 ‘내곡동 사건’을 뉴스에서 어떻게 보도했는지 보자.

▲ 10월 9일 KBS <뉴스9> 9번째 꼭지 <내곡동 사저 신축>

10월 9일 KBS 9시뉴스에 이른바 ‘내곡동 사건’이 처음 등장한다. 이미 이틀 전에 ‘나는 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가 첫 번째 의혹을 제기했고 이후 청와대에서 해명자료를 냈기 때문이다. 제목은 <이 대통령, 퇴임 후 내곡동 사저 건립 추진>. 모두 8문장으로 이뤄진 이 리포트는 7문장이 ‘순수하게’ 청와대의 발표로 이뤄졌다. 이 문제가 왜 제기됐는지는 설명이 없다. 그럼 나머지 한 문장은? 이렇다.

또 아들 명의로 매입한 데 대해 일부 문제 제기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이나 김윤옥 여사 명의로 부지 매입에 나서면 사저의 위치가 너무 일찍 노출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아들 이시형 씨가 사도록 했다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역시 청와대의 해명이다. 8문장이 모두 청와대의 해명으로 꽉 찬 셈이다. 이 기사로는 청와대의 내곡동 부지 매입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그저 논현동에서 내곡동으로 사저를 옮기기로 했고 보안 문제로 아들 명의로 매입했다는 청와대 발표만 인용한 것이다. KBS가 ‘청와대 확성기’라는 말은 그냥 말이 아니라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KBS 9시뉴스에는 관련 뉴스가 3번 더 등장한다. 10월 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논란’, 10월 12일 ‘여야 간의 논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10월 17일이다. ‘논란’을 참 좋아한다. 가치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취재를 하지 않는다. “야당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공격했다.” “정부는 이렇게 이렇게 반박했다.” 그리고… 끝이다. 노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취재기자 그 누구도 내곡동 현장에서 취재한 일이 없다고 한다. KBS 보도본부 간부들의 반응은 “야당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는데 우리가 굳이…”였다고 한다. 오호라. 언제부터 우리가 정치인들을 그렇게 믿었을까. KBS 기자들은 모두 앵무새가 되기로 다 같이 모여서 결의라도 한 것일까.

그리고 10월 17일 결론이 내려졌다. 청와대에서 내곡동 사저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리포트는 역시 청와대의 발표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발표를 나름대로 해석한다. 요는 “각종 의혹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보궐 선거에 미칠 영향과 한나라당의 강력한 요청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내곡동 사건’은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정치적인 공세에서 비롯된 ‘의혹’일 뿐이며, 청와대가 그 의혹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국의 결단’을 한 것으로 프레임이 완성된다.

일정 부분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적인 역학관계를 해석하기에 앞서 무엇이 맞고 틀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기자질’이라는 직업의 마지막 가치이다. 정치적인 프레임이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양쪽의 의견을 50대 50으로 균형 있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사실을 왜 억지로 무시하는가. KBS는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 10월 12일 오전 < KBS 뉴스광장>에서 이세강 해설위원이 내곡동 사저 관련 뉴스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는 모습.

KBS는 이 복잡하고 미묘한 ‘내곡동 사건’에 대해서 ‘취재파일4321’이나 ‘미디어비평’ 등 시사프로그램에서 단 한 차례도 다루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침뉴스에 나오는 <뉴스해설>이라는 코너에서 이 문제를 한 번 다뤘다. 10월 12일 방송된 이 해설의 제목은 <내곡동 사저 민심 헤아려야>. 구구절절 명문인 이 해설을 잠깐 보자. 해설은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다”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이명박 대통령은 논현동 자택을 빼고 3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재단에 내놓고 퇴임하면 논현동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러한 대통령이 개발 이익을 노려 내곡동 사저를 지으려했겠습니까? 또 대통령이 세금을 탈루하기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 없을 듯합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논현동 현재의 사저는 경호 등의 문제로 퇴임 후 돌아가 살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경호 등의 문제로 비밀스럽게 추진해야할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도대체 이 무슨 말인가.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가. 유일한 근거는 3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기부해서란다. 이 재단에 대한 여러 문제나 의혹제기를 아는가 모르는가.

해설은 이어진다. “청와대 측의 해명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뒤, “원칙에 입각한 당당한 처신이 남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충정어린 충고를 잊지 않는다.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이 사실상 이번 선거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파적인 색깔은 명확하지만 조중동의 ‘아젠다 세팅 권력’을 접수해버렸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권력 감시 기능이 사라진 주류 언론에 대한 실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막 내지르는 시원한 ‘스타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구태의연하게도 ‘진실을 파고드는 집요한 기자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그런 기자들을 대중들은 원하는 것이다.

KBS라는 공영방송 언론사와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의 역할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언론사에 모두 기자들이 있다. “나는 KBS기자다”라고 폼만 잡고 다니면서 청와대 발표만 중계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KBS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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