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유명인들에 관한 ‘학폭’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이 주 전에 이 주제에 관해 글(=배구계 '학폭 미투'가 가 닿아야 할 방향)을 썼지만, 가해 의혹이 터지는 분야와 가해 혐의의 성격은 더 넓고 다양해져가기만 한다. 이미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와 걸그룹 아이들이 논란에 휘말렸고, 스트레이 키즈의 경우 폭로에 오른 멤버가 활동을 중단했다. 아이들의 소속사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아직까지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요 며칠 사이엔 걸그룹 에이프릴의 한 탈퇴 멤버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었다는 멤버 간 따돌림 의혹이 나왔다.

현 상황에서 문제의 초점을 케이팝에 한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은 케이팝 산업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숱한 폭로가 터지는 상황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다만 케이팝 산업 내부의 특수성이 이 보편적인 문제와 어떻게 물려 있는지 따져 볼 수는 있을 텐데, 근본적으로 기획사를 운영하는 이들이 제 분수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산업을 운영하고 있다. 미성년자에 이르는 어린 연습생들을 거둬들이고, 그들을 스물네 시간 한 데 묶어 합숙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건 물론 매니지먼트와 가수 육성의 효율성을 위한 것인데, 사업가 이상의 자질도 목적의식도 없는 집단이 많은 사람의 삶을 훈육하고 돌보아야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굴리는 것이다. 문제의 소지가 팽배한 상태로 사업을 하면서 문제를 케어하는 체계는 없다면 문제가 터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아이돌 '학폭'…소속사들 강력 대응 (연합뉴스 [영상] 갈무리)

케이팝 신에서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 따위의 이슈는 새롭지 않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갈 것도 없다. 재작년만 해도 프로듀스 시리즈에 출연 중이던 기획사 JYP 소속 연습생에 관해 학교 폭력 논란이 터졌고, JYP는 해당 연습생과 계약을 해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JYP는 평소 연습생들의 ‘인성’을 중시하고 교육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덕에 경쟁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범죄 스캔들이 터졌을 때 반사 이득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성’이란 프레임이 문제다. 현재 빗발치는 논란들에서도 여론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인성을 욕한다. 그들의 과거 행적에 비화,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표정까지 낱알처럼 털고 “이때부터 알아봤다”는 식으로 무속인 행세를 한다. 학교 폭력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그들이 놓인 환경의 영향력을 좀 더 주의 깊게 함께 보아야 하는 성격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가해 지목인들이 어린 나이에 가해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반대로 그들의 인성이 떡잎부터 글러 먹었다는 결론으로 직행하는 논거가 돼 버린다. 이런 방식으로 폭력이란 개념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한국은 사람에 관계된 모든 사안을 '인성'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인성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인성이란 게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중구난방이거나 “착한 성품” 같은 막연한 소리로 통일될 것 같다. 이렇듯 구체성 없는 개념으로 사회 쟁점을 대한다면 구체성을 갖고 논할 문제들이 저마다의 성품으로 개인화되며 기준이 사라진다. ‘인성’이라고 회자되는 말의 용례를 뜯어보면, 이타심, 협동심, 참을성, 예의범절, 준법의식, 도덕의식, 시민의식 같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리고 저 많은 개념들은 싸잡을 수 없는 서로 다른 개념이거나, 현실을 사는 한 인간의 인격에서 함께 묶여서 함양되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술 담배 안 하고 인사성 좋은 사람이라도 범법을 저지를 수 있고, 내 주변 사람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인 그이가 그밖에 있는 누군가에겐 냉혈한이 될 수도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해서도 인성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관념과 감수성이 더 구체적인 개념이다. 모든 종류의 폭력은 그걸 빚는 환경의 특성과 권력관계를 떠나서 생각하기 힘들다. 학교 폭력의 변수는 인성 나쁜 개인을 넘어 교사와 가정, 나아가 교실 문화, 학생들이 공유하는 패거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집단 내 따돌림 역시 개개인의 성품을 넘어 그들 간의 이해관계나 동류의식, 권력관계 등에서 비롯한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기관 교육부 직접 운영, 피해학생과 가해자의 분리된 공간에서의 회복 지원, 피해학생 전담시설은 치유에 특화된 전문기관 위탁 운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성이란 프레임을 강조하다 보면 잘못된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기준에 맞춰 현실을 미봉하게 된다. 심지어 그런 프레임이 오히려 따돌림과 학교 폭력을 낳는 데 일조해 왔을지도 모른다. 인성은 종종 사회성이란 뜻으로 등치 돼서 뱉어진다. 많은 경우 개인이 다수에게 맞춰가는 태도,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낮은 자세처럼 통한다. 인성은 한국 사회 고유의 강한 집단주의 아래 개개인이 요구받는 덕목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내면화한 집단에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거나 특별 대접을 받는 듯한 구성원이 있다면 그 사실 자체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뒷얘기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다수의 눈총을 이겨 낼 만큼 몸과 마음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괴롭힘은 본격화된다. 가해자들은 그것을 ‘나쁜 행동’이 아니라 인성이 잘못된 사람이 받는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성 같은 프레임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왜곡한다.

만약 아이돌 그룹 내부나 기획사 연습생들 사이에서 따돌림이 생겨 봉합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피해자를 탈퇴 처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획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대상일까, 회사 운영을 방해하는 ‘미꾸라지’ 한 마리, 그러니까 ‘인성’에 문제가 있어 도려내야 하는 인원으로 보일까. 전자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사실,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