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1항

출생한 아이가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 출생 신고.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아이를 내 아이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절벽 앞에 선 듯 막막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내 아이로 인정 받는다 해도 그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도와주기는커녕, 제대로 밥벌이하며 살아가기조차 힘들다. 어느 나라 일이냐고?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와 자립 사이의 딜레마

EBS 1TV 다큐 잇it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것’ 편

미혼모, 이 단어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열 살 먹은 지윤이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고 엄마에게 묻는다. 미혼모가 나쁜 뜻이냐고. 그런 지윤이에게 엄마는 ‘멋있는 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가 지윤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 키우는 일, 바로 그 멋있는 일을 한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지만 아직도 받아쓰기가 서툰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치는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는 27살이다. 딸 지윤이에게 멋진 일이라고 했던 일, 지윤이를 낳기로 결심한 10년 전 그날 이후 하린 씨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대출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미혼모 지원 단체와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겨우 지금까지 왔다. 냉장고, 세탁기, 옷장까지 하린 씨네 모든 게 지원 물품이다. 하린이와 엄마가 먹는 것도 대부분 지원된 것이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딜레마'이다. 중위소득(총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 52%를 기준으로 2020년 월 1,555,830원, 최저임금 수준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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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와 같다 보니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외려 지원이 깎인다. 지윤이 엄마만이 아니다. 많은 한부모 가정들이 복지와 자립 사이에서 고민하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기를 택한다.

그래도 하린 씨는 현재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를 낳은 일이 멋진 일이 되기 위해, 아이가 보기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린 씨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만약 하린 씨가 취업을 하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 것이다. 당장 지윤이의 학업을 도와주는 돌봄 선생님 지원도 끊어진다. 지윤이를 키우며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기본권이라도 인정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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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윤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받은 하린 씨는 괜찮은 경우일지 모른다. 엄마들과 달리,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의 경우 출생한 아이의 주민번호를 받는 과정마저 쉽지 않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만 해도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법은 여전히 미혼부의 아이를 ‘혼외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8살 사랑이를 키우는 김지환 씨의 경우 사랑이의 주민번호를 받기 위해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업고 1인 시위를 하며 일명 '사랑이 법'을 쟁취해낸 김지환 씨. 하지만 그건 소송 과정을 간소화하는 임시방편일 뿐 여전히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2018년 지자체에서 파악한 미신고 아동 건수가 114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1000여 명 이상, 법의 그늘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환 씨에게는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20대 남성이 아이와 함께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20대 남성이 지병으로 죽고, 그 옆에 있던 몇 달 안 된 아기는 굶어 죽은 상황이었다. 아기는 당연히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미연고자로 처리되었다. 아기가 출생신고라도 되었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지환 씨로 하여금 미혼부들의 출생신고 소송을 돕는 데 나서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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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 씨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정적 절차를 따라하다 일처리가 제대로 안 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혼자서는 아직도 복잡한 소송 절차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지환 씨는 ‘사랑이 법’으로는 적용이 안 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출생 사실을 국가 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라 국가의 권리보호의무를 강화하는 '출생 통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아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지 멀쩡한 놈이 애 하나 못 키우겠냐며 자신의 아이를 거두려 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주민번호를 받지 못한 아이를 키우려니 필수 예방접종조차 돈을 내고 해야 했다. 갓난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남 목포에 사는 최경훈 씨는 두 아이를 키우며 본의 아니게 결근을 하다 보니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다니겠느냐며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기초수급을 받고 있지만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기고 여러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건 경훈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혼모건 미혼부건,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그 누구도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했던 최경훈 씨는 자신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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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가족 협회에서 근무하는 정수진 씨는 근무조건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부산역 1층에서 함께 식당을 연 미혼모들 역시 '이심전심'의 조건 덕분에 눈치를 덜 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자립이 어렵고, 막상 자립을 하면 정부 지원이 끊어지는 상황은 많은 미혼모와 미혼부에게 '저소득층'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게 한다.

정수진 씨가 안타까운 건 도와주고 싶어도 연락조차 쉽지 않은 미혼모들의 현실이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여가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운 상태다.

<다큐 잇it>에 나온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묻는다. 과연 '정상 가족'이 무엇이냐고. 여전히 엄마 아빠가 있는 3~4인 가족을 ‘정상’이라고 보는 거냐고. 엄마 혼자 키워도, 아빠 혼자 키워도 자신들도 가족이라고. 자신들이 정상의 가족이고, 보통의 가족이며, 일반적인 가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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