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EBS에서는 <다큐프라임> '미국 국립공원 시리즈'가 방송되고 있다. 국내 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국립공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외국 채널의 화면을 통해서만 이 곳을 접해봤던 시청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다가갈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EBS 이대섭 PD를 지난 14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흔히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내 방송사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룬 적이 없었다"며 "국립공원이라는 아이디어나 용어 자체가 처음으로 생겨난 미국의 국립공원을 살펴보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촬영절차 까다롭고 비용 너무 비싸…직접 부딪혔다"

▲ EBS 이대섭 PD ⓒ곽상아

- 국내 최초로 미국의 국립공원을 촬영했다. 허가 절차가 쉽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미국의 국립공원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 산하에 있는 국립공원관리소(NPS: National Park Service)와 접촉해서 정식으로 허가장을 받아야 한다. 가장 공식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촬영 허가장이 나오기까지 2년이나 걸린다. 팀당 100만 달러(약 10억)짜리 대물변상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 국립공원마다 촬영이용료로 900달러(약 100만원)를 또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말이다. 한달 촬영하면 약 3000만원, 두달 촬영하면 약 6000만원이다.

여기서 의구심이 들었다. 못 사는 나라라면 이해한다. 그런데도 촬영료를 하루에 900달러 씩이나 요구하다니….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을 촬영하러 올 때도 이런 식으로 돈을 받는지 궁금했다.

다른 방법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었다. 각 공원마다 공원관리소를 찾아가 부탁하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촬영허가를 받게 됐다. 돈은 협상 과정에서 면제받았다. '확률은 절반'이라는 생각으로 관리소 소장들을 만나서 기획의도와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 미국 국립공원을 아아템으로 잡은 동기는 무엇인가.

"국내 방송사에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도한 곳은 없었다. '국립공원'이라는 아이디어나 용어 자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로 지정된 미국 국립공원의 의의를 알고 싶었다.

1872년 '옐로스톤'이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가가 책임지고 자연 지역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세계 최초로 '보존난민'도 탄생했다. 미국은 국립공원을 만들기 위해 그곳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다 쫓아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아무 죄도 없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다. 보상을 받았을 리도 만무하다. 미국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기획은 작년 3월에 시작했다. 준비기간은 3개월, 촬영기간은 2개월이 걸렸고 5명의 인력(책임피디, 조연출, 카메라맨, 현지 코디 2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다보니 의외로 '미국 국립공원'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더라. 또한 그쪽에서 허가를 내준 곳도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는 시도 자체를 안 했을 수도 있고, 시도를 했더라도 이런 과정들에 질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지난 3월 17일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빙하가 빚은 예술, 요세미티 국립공원' ⓒEBS
촬영도 물론 힘들었지만 '설득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불안감이 컸다. 현장에서 설득을 통해 촬영 허가장을 받아야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공원관리소 관계자들이 잘 양해해줘서 예정대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갖고 설득했나.

"한미 비자면제협정에 따라 앞으로 한국 관광객들이 미국 국립공원에 더 많이 가게 될텐데 실질적으로 한국 내에 미국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줬다. 이런 정보를 한국의 교육방송, 공영방송에서 내보내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public'(공영)이라는 말에 'OK'를 하더라."

"미국 공원관리소 직원이 자연생태에 대해 해설"

-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에서는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을 레인저(ranger)라고 부른다. 독자적인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놀라웠다. 우리와 다른 점이다. 단속만 하는 게 아니라 체포권한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레인저들의 90%는 '자연해설가(nature interpreter)'다. 팀을 구성해서 공원의 생태와 야생동물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그 모습이 굉장히 부러웠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들도 관리만 하지 않고, 이런 역할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마다 레인저들의 숫자는 대개 200~300명이다. 모두 정규직이고 성수기 동안에만 비정규직 레인저들을 고용해 500~600명까지 인원을 보충한다. 대학생들이나 교사들이 많이 지원한다. 과연 '비정규직의 나라'답게 고용이나 해임, 파면에 대해 상당히 자유로웠다. 어차피 비정규직인 줄 아는데다 자연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로 불만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정말 부러웠던 것은 각 공원마다 '비지터센터'가 있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안내소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달랐다. 공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모형, 미니어처, 표본들이 비치돼 있어 비지터 센터 한 바퀴만 돌면 공원에 대한 중요한 내용은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해당 국립공원에 대한 책자가 수백 권이라는 것이다. 물론 구입해야 하지만 구입 여부를 떠나서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국립공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비지터센터는 국립공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배후마을에도 있다. 그곳의 상인들, 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해서 비지터 센터를 세우는데 모든 숙박, 레크리에이션 정보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런 비지터센터 시스템이 우리나라엔 없다.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다."

"산불로 인한 화재, 그대로 내버려둔다"

▲ EBS 이대섭 PD ⓒ곽상아
- 미국의 국립공원은 자연화재를 인위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맞다. 정말 특이하다. 미국 국립공원은 산불을 인위적으로 진화하지 않는 'Lei it be burn' 정책으로 유명하다. 번개에 의해 산불이 몇십건씩 일어나도 전혀 끄지 않는다. 탈 때까지 내버려둔다. 우리가 보면 무식할 정도다. 인간에 의한 방화, 인명이나 재산에 손실을 끼치는 경우만 제외하면 그대로 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해서 자연진화 될 때까지. 인간이 개입을 할 필요가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거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번개나 산불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이 울창한 산림이 있는 것을 '자연의 이치'라고 보는 것 같다.

산불이 나면 산에는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산에서 우위를 점했던 수종들이 산불에 의해 사라지게 되고 우위에 억눌려있던 마이너리티들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다. 로치폴소나무 같은 경우 열을 받으면 터진다. 그러면 오히려 더 많은 씨를 퍼뜨릴 수 있다. 그리고 산불이 나서 나무가 없어지면 초원이 생기는데 이 초원이 초식동물에게는 아주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심지어 옐로스톤의 면적은 우리의 강원도 만한데 이중 3분의 1이 타버렸다. 그곳에는 시체처럼 불타버린 나무들이 있는데 사실 그런 모습도 매우 경이로웠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산림의 기초가 허약하고 국토가 좁은 상황에서는 미국의 이 정책을 모방해선 안 될 것 같다. 산 자체도 미국에 비해 작고 인가도 밀접해있으니 우리가 'Lei it be burn' 정책을 취하면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많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환경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대로 환경이 있으니까."

"국립공원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 있고, 내부에 골프장도 있다"

- 미국국립공원은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자동차 공해 때문에 미국 국립공원 측은 사실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국립공원에 도로를 뚫어놨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만 있으면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계속 던져봤는데 결국 미국 국립공원이 표방하는 표어 '인간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처럼 자연을 항상 인간이 접근가능한 상태로 놔두는 것 같다. 이런 철학 때문에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설악산 꼭대기까지 자동차도로가 뚫린 거나 마찬가지다. 미국 국민들 대다수가 이런 것에 대해 합의가 돼 있어 반감을 갖지 않는다. 물론 환경단체들은 반발하지만.

자동차로 인한 대기 오염은 해결하기 힘들 것 같다. 대책 마련은 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자동차는 공원 밖에다 두고 셔틀버스로 공원 안을 돌아다니게 하는 방안을 오래 전부터 세워놨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리고 미국 국립공원 내부에는 골프장도 있다. 매우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난리가 났을텐데. 공원마다 있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 한두개씩 있다. 공원 측에 '왜 골프장을 국립공원 내부에 만들었냐'고 물어봤는데 '초원지대를 보호하기 위해 골프장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미국인들, '스카이워크' 만들게 된 근본 이유에 대해 침묵"

-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의 '스카이워크'를 국내 최초로 카메라에 담았다.

"스카이워크 내부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바깥에서 촬영하는 것만 허락하더라. 입장료는 75달러였는데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다. 내가 걸어보니까 75걸음이다. 한번 걷는 데 1달러다. 스카이워크는 10~20년 전에 건립 계획이 발표되면서 미국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었다. '어떻게 그랜드 캐니언에 그런 인공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느냐'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이 강행했다. 인디언보호자치구역이라서 인디언들이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인디언들이 나선 근본적 이유는 인디언들에게 미국이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이 인디언 사회다. 연간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 불과하다. 미국 안에 '방글라데시'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카이워크를 찍기 위해 가는데 놀랍게도 인디언들 동네의 도로는 비포장이더라. 처음엔 여기가 미국 땅인지 의심스러웠다. 스카이워크에 대해 물어보면 미국인들은 '환경파괴'를 들며 반대하지만, 스카이워크를 만들게 된 근본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씁쓸하다."

"노력의 산물, 즐겨주시라"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원은 어디인가.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곳은 옐로스톤이다. 지질과 야생에 대한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야생이 풍부한 곳이며 화산지대 위에 위치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립공원 중 하나다.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다만 한국사람들이 접근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와이오밍주에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 밀집지역과 거리가 좀 멀다."

-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방대한 자연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야 할 지 많이 고민했다.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미국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면 좋겠다. 백과사전의 한 부분처럼 말이다. 만약 그랜드 캐니언이나 요세미티를 가고 싶을 때 어디를 가야 뭘 볼 수 있고, 지형·지질은 어떻게 탄생했고, 의미는 무엇인지 등 이런 정보들을 시청자들에게 상세히 알려주고 싶었다. 촬영을 하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도 힘들었고, 공원 자체가 워낙 방대해 촬영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이런 노력의 산물을 시청자들께서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