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18일 TV토론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퀴어문화축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대해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사회로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다.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일침을 날렸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다음날 “안 후보의 인권 감수성이 개탄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는 안 후보 발언을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보도했고, 혐오표현 연구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개인 SNS에 "저는 안철수의 발언이 듣기 싫은데 저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 받을 수 있는지요?"라는 패러디를 남겼다.

이는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대항표현’의 대표적 사례다. 24일 사단법인 오픈넷과 진보네트워크센터가 공동 주최한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토론회에서 대항표현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논의됐다.

대다수 언론은 안철수 예비후보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고 (왼쪽), 연합뉴스,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은 팩트체크 형식으로 발언의 사실여부를 확인헀다 (오른쪽).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 변호사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과 더불어 대항표현 방식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몇 년 전 KBS <심야토론>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찬반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동성애 찬반 토론이 되어버렸는데 토론 중 동성애 혐오 발언이 계속 나왔고 진행자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박 변호사는 “토론이 끝나고 해당 PD와 면담을 했다. PD는 중립을 위해 찬반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언론의 중립이 단순히 찬반을 듣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론이 기계적 중립에 서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 발언은 안 된다’고 개입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박 변호사는 “최근에는 줄어들었는데 언론이 퀴어축제를 보도할 때 참가자 한 명과 반대진영에 서있는 사람을 인터뷰한 뒤 ‘논란’으로 보도한다. 퀴어축제 참가자는 ‘즐거워요’, 반대하는 사람은 ‘화가나요’로 제목은 ‘논란 키우는 축제’로 뽑는다”며 “언론이 혐오 표현을 그대로 보도하는 게 아닌 일정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은 “발언을 전달하는 자체만으로 혐오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보도 자체를 안 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혐오표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민석 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자는 언론인에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온 선언문을 추천했다. 2019년 인권위가 조사한 ‘혐오표현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9.1%는 언론이 혐오표현을 조장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응답자들은 혐오표현 대응 정책 중 ‘언론에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표현이나 보도 자제(87.2%)’를 1위로 꼽아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나타냈다.

인권위는 지난해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9개 미디어 단체와 공동으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마련해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팩트체크를 통한 비판적 전달, 역사부정 발언 지적 등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위한 미디어 종사자들의 실천사항이 담겼다.

캐시 버거의 자료집에 올라온 '우리는 모두 원숭이다' 해시태그 운동 사진

이날 토론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항표현이 소개됐다. 캐시 버거 혐오표현 프로젝트(Dangerous speech project) 연구팀장은 “10명이 대화할 때 한 명이 혐오표현에 대항하면 분위기를 바꾸기 어렵지만 9명이 대항표현을 하고 한 명이 혐오표현을 하면 대항표현이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다양한 방식의 대항표현이 나와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캐시 버거 팀장은 SNS 해시태그 운동 #somostodosmacacos #weareallmonkeys 사례를 소개했다. 유럽 축구장에서 잘못된 인종차별 관행으로 유색인종 선수에게 바나나가 던져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두 선수가 바나나를 집어먹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우리는 모두 원숭이다’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는 하나의 캠페인이 됐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바나나를 먹는 사진을 올리며 유대감을 표시했다. 캐시 버거 팀장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관행이 잘못됐다는 의미를 알리는 대항표현이었다”고 말했다.

유민석 박사과정 수료자는 개인적 대항표현의 예시로 개그우먼 김숙의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된다”와 같은 미러링 방법이나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집단적 대항표현으로 동성애 혐오사이트를 풍자해 만든 사이트 , 성명서, 청원, 집회, 반론보도요청, 칼럼 등 형태가 있다. 또 귄위를 가진 이가 소수자를 대신해 나서는 방식이 있으며 안 후보 발언에 대한 금 후보의 반박이 이에 해당된다.

박지현 랜덤웍스 테크디렉터가 소개한 댓글 시각화 시스템

악성 댓글 처리 알고리즘을 활용한 기술적인 대응방식이 있다. 박지현 랜덤웍스 테크 디렉터는 댓글 시각화 시스템을 소개했다. 사용자가 댓글을 작성할 때 부정적인 요소가 50% 이상이면 사이렌 아이콘 이미지가 나타나 경고를 가한다. 댓글을 작성하고 나면 색조 및 채도를 통해 긍·부정도가 시각화된 전체 댓글이 나타난다.

악성 댓글인 경우 마우스를 올리면 3초 이후 댓글을 읽을 수 있고 부정적인 댓글은 빨간색, 긍정은 파란색, 중립은 녹색으로 표시된다. 이용자에게 비공감을 많이 받으면 채도가 낮아져 노출도가 떨어진다. 해당 시스템을 평가한 100명은 설문조사에서 “댓글의 긍·부정도를 시각화한 점에서 독자 반응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 디렉터는 “댓글 작성 중 댓글의 긍정부정도를 실시간으로 판단해 자기 검열 기회를 제공하고, 독자들의 전체 반응과 생각 경향을 파악할 수 있으며 수많은 댓글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