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해 민주당의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찬반 양측에서 나왔다. 민주당이 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법상 명예훼손 폐지를 함께 고려하지 않았으며 외부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중재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에 규율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법학회는 24일 민주당의 6대 언론관계법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은 언론사·포털·1인 미디어 등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발생시킨 댓글이 게재될 경우 피해자 요청에 따라 게시판 운영을 제한조치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정정보도 시 원 보도의 2분의 1이상 크기·분량으로 배치하는 것을 강제하고, 피해자에게 '기사열람 차단청구권'을 부여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추진한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입법을 중점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장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했지만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정보통신망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건 언론사와 개인을 구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사는 법에 근거해 표현행위를 한다. 1인 미디어와 규율을 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악의적 허위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피해액의 3배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김 본부장은 정청래 의원 발의안 내용 중 ‘악의적’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김 본부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악의적’이라는 조건을 두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며 “봉쇄소송 사례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본부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추진 과정에서 형법상 명예훼손제 폐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역시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등 전반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생산적 논의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지 않아 발생했던 문제점이 뭔지 논의해야 한다”면서 “시민 공분을 부르는 보도는 대부분 의견보도다. 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심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면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없애야 한다”면서 “전체 미디어·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현실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걸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언론단체, 시민단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정부 여당은 첨예하고 민감한 법안을 추진하면서 여론 수렴 작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면서 “관련 공청회나 토론회가 없었다. 소통하지 않고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 협회장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도 좋은 의도였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실패하게 됐다”며 “이런 과정이 되풀이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정보도 크기·분량을 강제한 개정안에 대해 김동훈 협회장은 “언론사가 정정 및 반론보도에 인색하면 안 된다”면서 “다만 정정보도 형식이 법으로 규정되면 편집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태 교수는 “정정보도 관련 법안은 비현실적”이라면서 “취지는 알겠으나, 정정보도가 나간다는 것은 당사자 간 합의를 마쳤다는 뜻”이라고 했다. 심 교수는 “다만 잘못된 보도에 노출된 이용자를 생각해보면 언론사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현 본부장은 “정정보도는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다. 현재 규정대로 정정보도 제도를 운용해도 충분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본부장은 기사열람 차단청구권에 대해 “열람 차단도 당사자 간 합의사항”이라며 “기사 열람을 차단하는 건 삭제와 다름없다. 요건을 더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언론중재위 위원 증원 문제와 관련해 시민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본부장은 “현재 법관, 변호사, 언론계 종사자만 언론중재위원 자격을 가진다”면서 “언론보도 피해자일 수 있는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이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조선일보는 지난해 민주노총 산하 서울대병원 노조가 코로나19 와중에 워크숍을 간다고 보도했다”면서 “하지만 알고 보니 노조는 워크숍을 취소했다. 조선일보가 인터뷰나 반론 취재를 하지 않고 보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이런 경우 차후 정정보도를 낸다고 뭐가 달라지는가”라면서 “언론보도 피해자 인격권을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1 미디어 관련 법률안의 쟁점 연속기획 긴급토론회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유튜브 갈무리)

이번 ‘2021 미디어 관련 법률안의 쟁점 연속기획 긴급토론회’는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발제자는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사회자는 김영욱 카이스트 교수다. 토론자는 김동훈 기자협회 회장,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장,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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