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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명장면에 숨겨진 짝수의 비밀[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1.10.28 09:44

뿌리깊은 나무는 사극, 현대극을 망라해서 비교할 만한 드라마를 찾기 어려운 명작의 품위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한석규가 연기하는 세종은 진짜 빙의라도 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보이고 있어 이 드라마의 품격을 높이는 일등공신으로 꼽을 수 있다. 한석규는 대사와 지문을 넘어서 5백 년 전 세종이 겪었던 고독과 번민을 실감이 아닌 실제인 것처럼 연기해내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뿌리깊은 나무의 고민이라면 지나치게(?) 수준이 높아 드라마 시청률의 견인차인 여성팬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본 사람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 구조와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무거운 주제와 복잡한 관계도가 문제다. 그래서 이 탄탄한 드라마의 지고지순한 구조가 시청률로 인해 변질될까도 은근히 저어되기도 한다.

27일로 8회를 방영한 뿌리깊은 나무는 진작부터 드라마광들의 복습재료가 되고 있고, 그 속에도 아무리 반복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불후의 명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방영됐으면 명장면에 속할 수 있으나 본방에서 누락되어 안타까운 예고편 속 명장면도 있다. 뿌리깊은 나무 방영 한 달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명장면들을 꼽아본다. 또한 명장면 속 숨겨진 비밀도 찾아보았다.

명장면 1. 세종과 태종의 극한 대립

   
 
세종은 조선왕조 어느 왕보다 문치의 덕을 높이 세운 왕이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혁신을 이룬 세종은 부드럽지만 유약하지 않은 강력한 왕권을 유지했다. 그것을 예고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으로 인해 어린세종 송중기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시청자에게 심어주었고, 짧았지만 송중기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무휼의 조진웅도 그 명장면에 합세했다.
 
아직은 모두의 뇌리 속에 생생한 대사. “왕을 참칭하지 마라. 상왕은 왕이 아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해당하면 그 범인을 즉시 참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은 무휼이 아주 짧게 망설이다가 “무사 무휼, 한 치의 실수없이 명을 수행할 것입니다”까지 연결되는 장면이다. 무서운 아버지이자 왕인 태종에게 억눌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세종이 처음 왕으로서의 기개를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세종의 결심이었다. 그리고 무사이자 충실한 신하의 결심을 보탠 것이 무휼이었다. 이 장면은 묘하게도 8회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8회 마지막에 똘복과 세종 사이에서 나온 명대사와 이어진다. 똘복은 “결심이 없으면 내가 아니다”라는 멋진 말을 해 세종을 수긍케 했다.

명장면 2. 세종과 궁녀 소이의 대화
 

   
 
“울지 마라, 어명이다. 나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서는 아니 된다” 자신의 밀명을 좇아 한글을 연구하던 집현전 학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세종은 견디지 못할 자책과 슬픔에 빠졌다. 세종은 소이 앞에서 그런 자신의 속을 드러내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말을 하지 못하는 소이는 종이에다가 “전하의 탓이 아닙니다”라고 써서 바친다. 그러나 세종은 그것을 뿌리치고 소이는 다시 써서 올리고를 반복하다가 이내 세종은 같은 말을 종이에 쓰는 소이의 손을 잡고 말하는 대목이다.
 
세종이 소이에게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한 것은 충신들의 죽음 앞에 자신의 고통은 위로받을 수 없다는 의미와 동시에 똘복이의 존재를 알리지 못하는 미안함이 동시에 담긴 대사였다. 이 장면은 세종의 지극히도 인간적인 심성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궁녀로부터 위안을 받는 고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임금이란 자리는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을 진다. 그 스트레스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인지상의 왕이지만 그 고통을 한낱 궁녀에게 와서 위로받는 세종의 모습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명장면 3. 집현전 이만 원(세종이 두 명 나와서) 사건

   
 
한석규는 제작발표회 때 연산의 모습을 담은 세종을 연기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집현전에서 젊었을 때와 자신과 대화하는 환영에 빠진 것이었다. 한글의 자모음이 완성단계였고 그것을 맡아 연구하던 장교리가 밀본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세종은 몹시 격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급기야 조정신료들을 불러 모아 조세법을 새로 정리하겠다고 선포한다. 이는 아직 개국 초기인 조선에 있어서 대단히 금기시되는 사안이다. 꼭 밀본이 아니어도 조선개국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대부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잇따른 집현전 학사의 죽음과 밀본의 정체까지 자신을 옥죄어오는 상황에서 세종은 자신이 그토록 염증을 냈던 아버지 태종의 모습을 본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종의 본심일 리는 없다. 그러나 왕이기에 앞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질 수도 있는 반감이며, 복수심이다. 그런 세종이 집현전을 지나다 그 안에서 젊은 날의 자신을 발견하고 마치 남을 대하는 것처럼 욕을 하고 침을 뱉는다. 이 장면은 심리학자들이 아주 좋아했을 것 같다. 이는 자기동일성 부정이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심리증상이다. 연산이 수많은 환각을 겪었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연산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햄릿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아주 의외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짓궂은 누리꾼들은 이만 원 사건이라고 재치 있게 이름을 붙였다.

명장면 +1. 예고편 속 세종과 무휼의 눈물
 

   
 
요즘 드라마의 예고편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예고편에만 나오고 본방송에는 누락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8회를 예고한 7회의 예고편 속의 세종과 무휼의 눈물이다. 기대가 컸는데 본방에서 누락되어 아쉬움에 플러스 명장면으로 추가했다. 물론 여기서 고른 세 장면들 말고도 뿌리깊은 나무에는 더 많은 명장면들이 담겨 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명장면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명장면, 명대사는 짝수 횟수 방송에 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음 일주일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인데, 이런 것도 드라마의 기술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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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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