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실상 사의를 철회했다. 대통령에게 거취를 일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22일 오전까지만 해도 사의 철회는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했기에 판단을 바꾼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주말 내내 여권의 설득 작업이 이어졌다지만 결정적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이 아니었을까 한다. 신현수 수석 입장에서도 자신의 거취 문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상황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거취를 일임”한다는 것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따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대다수 언론도 이 점에서 신현수 수석의 복귀는 ‘한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현수 수석에게 어떤 방식으로 잔류 명분을 줬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로 가정할 수 있는 것은 신현수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근본 원인인 검찰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재차 밝혔으리라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추-윤 갈등’이라 불렸던 지난해와 같은 상황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과 정권을 향한 수사를 완력으로 막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차원의 약속이 있었어야 한다. 신현수 수석은 주변에 보낸 문자를 통해 “동력이 떨어졌다”고 했는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역할을 맡겼을 수도 있다.

상상해볼 수 있는 두 번째 경우는 인정에 호소했을 경우다. 신현수 수석이 끝내 그만둘 경우 발생할 파장을 짚으면서 당분간이라도 직을 유지하기를 직접 청했으리라는 것이다. 앞서 ‘한시적 잔류’에 해당하는 시나리오인데, 이 경우라면 신현수 수석의 사의는 검찰과의 대립이라는 맥락을 벗어나는 형태로 수용될 것이다. 가령 재보선 패배 등으로 청와대 참모진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쇄신인사가 이뤄지는 경우다. 포스트-윤석열 체제에서 대대적인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함께 바꾸는 경우도 가정해볼 수 있다. 신현수 수석이 ‘완강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후임을 정할 때까지만 잔류를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 현실은 두 가지 가능성이 복합된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데, 22일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 시선이 쏠렸던 것도 그런 이유다. 박범계 장관과 여당은 어느 쪽에 치우친 인사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수사팀의 교체 등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애초 검찰이 요구했던 지난해 이뤄진 인사를 바로잡는 수준의 대규모 인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시점인 8월에 대규모 쇄신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라고 해왔다. 신현수 수석의 거취까지 묶어서 보면 정권과 검찰의 관계는 ‘휴전’에 불과한 상태로 보인다.

신현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를 생각하려면 왜 이런 상태가 됐는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핵심은 신현수 민정수석을 기용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방향 전환을 도모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추미애 시즌2’란 평가가 나온 검사장급 인사와 같은 형태로 귀결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통령이 진노했다거나, 대통령이 여당 강경파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거나, 심지어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재가도 없이 인사를 강행했다는 등의 보도는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단서이다. 이런 보도들은 진실을 전부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 한 조각의 ‘팩트’도 근거로 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일 것이다.

퍼즐 조각을 모아보면 검찰과의 관계 개선 방식에 대해 정권 내에 이견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꼭 윤석열 검찰과의 전쟁을 계속하는 건 아니더라도 추미애 장관 시절을 전부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백운규 전 장관 영장청구는 강경파들에게 “역시 윤석열 검찰은 믿을 수 없다”는 근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거의 유일한 내부의 견제수단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으로 하는 인사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고검장 승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안 수사에서 손을 뗄 가능성까지 점쳐졌던 이성윤 지검장이 자리를 지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야당은 이 과정에서 인사안 ‘결제’가 언제 어떻게 이뤄졌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법적 쟁점은 될 수 있지만 사태의 본질을 따질 수 있는 과정은 아니다. 인사안 결제가 언제 이루어졌든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편’들의 구상을 수용하기로 했고 그 결과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절차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의 의사가 관철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현수 수석의 반발은 절차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성윤 지검장 유임 등의 인사에 따라 검찰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게 된 자신이 더 이상 대통령이 맡긴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 핵심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현수 수석의 사의 파동은 결과적으로 이 점에 있어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고도 볼 수 있다. 검사장급 인사 이후 검찰은 신현수 수석을 통하더라도 정권과의 관계 개선은 ‘역시나’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됐을 것인데, 이번 일로 다시 ‘혹시나’ 할 수 있게 된 거다. 이건 정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와 같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 길만큼은 확실히 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속적으로 주는 게 중요하다.

남은 것은 여당, 특히 당내 주류가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 이후 공개적으로 검찰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거나 ‘정치적 야망’에 대한 의심을 언급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검찰-음모론’은 활용하는 사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신현수 수석에 대해서도 ‘윤석열의 그림자’를 언급한 인사가 있었다. 무슨 지적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황당한 이야기다.

검찰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지적은 필요하지만, 그걸 근거로 ‘프레임’을 만드는 시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을 향하는 수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대로 문제제기를 하면 된다. 하지만 배후의 ‘의도’만을 말하면서 권력을 활용해 수사를 사전적으로 차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수사 등에 대해서도 불법이 확인되면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려다 생긴 문제였으나 법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의 상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지난해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길을 열 수 있고 ‘제2의 신현수 파동’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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