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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옥동자를 통해 세종의 위대함을 본다[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1.10.27 08:29

뿌리깊은나무에 옥동자 정종철이 잊을만하면 등장해서 구희(口戱)와 구음(口音)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정종철의 특기인 성대모사를 보였다. 세종은 그에게 개짓는 소리를 흉내 내게 하고는 이내 궁녀까지 골려먹는 소탈한 인간미를 보였다. 그런데 이미 집현전 학사가 두 명이 죽은 곤욕스러운 상황에서도 세종은 정종철의 대려다가 구음을 시키고 있었다. 처음에 흉내 내던 악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이 “향피리”라고 하자 정종철은 어떤 악기를 흉내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향피리 같지는 않다)

도대체 밀본의 압박이 궁궐 내까지 침투하여 학사들을 죽이고, 급기야 한글창제의 반포마저 보류하게 되는 상황에서 세종은 어떻게 한가로운 구음연희를 즐기고 있을 수 있을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종이 아주 뛰어난 천재라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종은 자신과 그리고 영원히 후대에 이를 훈민정음 반포라는 엄청난 일을 막아서는 밀본의 존재 앞에서 분노하고 또 슬퍼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은 그 감정만으로 가득 찼던 것은 아니다. 세종은 훈민정음과 거의 같은 동기와 목적을 갖고 음악적 환경을 만드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스릴 줄 알았던 세종은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보통은 흘려버릴 수도 있는 삽화 같은 장면이었지만 김영현 작가의 세종에 대한 연구가 올바르고, 애정 또한 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세종이 옥동자에게 다른 악기를 연주하라는 의미로 “향피리”라고 했다. 왜 하고많은 악기 중에 향피리일까? 그렇다고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원경에 별감들까지 세운 것을 보면 대충 만든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소한 단서가 세종의 남다른 음악적 관심을 말해주고 있다. 향피리는 당피리보다 분명 더 오래 된 우리 악기지만 중국의 당악에 밀려 궁중음악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악기이다. 물론 본래 피리였다가 당피리가 들어오면서 구별하기 위해서 향피리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향피리가 사용되는 음악으로는 조선음악의 백미인 수제천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수많은 세종의 업적 중에서 한글창제에 집중하고 있다. 50회가 넘는 대장편이 아닌 이상 그 이상을 다루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하면 떠오르는 장영실도 이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지나가는 역할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음악 역시도 마찬가지다. 세종이 한국 전통음악의 기본이 되는 황종음을 정립하기 위한 황종척을 만들게 했다던지, 서양음악의 5선보에 대응하는 정간보를 만든 것 등등을 다룰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향피리라는 대사 하나로 세종의 음악적 업적을 상징하면서 한글창제의 동기와 의도를 작가는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 세종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여민락(與民樂)은 말 그대로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의미의 악곡으로 세종의 애민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의 근본이념인 애민사상과 같다. 또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의 정대업과 보태평도 세종의 주체 의지가 담긴 음악이다.

종묘제례악은 선대왕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과 춤이다. 세종이 조선의 첫 번째 왕도 아니고, 제사 역시도 처음 드린 왕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종 전의 왕들은 중국의 음악으로 제사음악을 대신했다. 정대업과 보태평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제사음악에 중국 것이 아닌 조선의 것을 쓰게 했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단지 제사음악만이 아니라 궁중음악에 전래의 음악을 사용하도록 한 것도 세종이었다.

제사음악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종은 “선조들이 살아계실 때는 한국음악을 좋아하고 즐겼는데, 돌아가셔서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중국의 음악을 연주해드린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평소에 즐기던 한국음악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 세종이 독립된 국가의 왕으로서의 주체적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무조건 중국을 따르는 것이 최고로 여겼다. 중국말과 다른 우리말을 만드는 것에 사대부가 반대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 코미디언이 감초역할로 나오는 것은 거의 공식화된 것과 다름없다. 그렇지만 정종철은 나와서 웃기기보다는 성대모사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예능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종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참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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