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재판부가 내놓은 기각 사유는 이례적이다. 대개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가능성이나 범죄 사실의 소명 정도를 언급하는데 영장 신청을 왜 기각할 수밖에 없는지 명확하게 적시했다. 요약하면 직권남용 등 혐의 성립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주의 우려가 없으며, 이미 다른 주요 참고인들이 구속돼있고 관련 진술도 확보돼 있어 구속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검찰이 정당한 정책 집행에 대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이런 주장은 오히려 본질을 흐린다. 구속영장 기각은 오히려 검찰이 수사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는 근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범죄 사실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예컨대 직권남용은 피의자가 했다는 일이 ’직권’에 해당하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법리 적용을 두고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으로 보면 백운규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다는 이유만으로 여당이 “시점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무리한 정치 수사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 여러 차례 지적된 일이지만 검찰의 수사 대상은 탈원전이라는 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 위법이 있었는지 여부이다. 여당으로서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의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하는 게 책임 있는 태도이다.

그럼에도 여당이 ‘검찰의 정치 수사’ 프레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수사의 본질이 아니라 ‘효과’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이어질 재판 과정에서 다뤄질 문제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위법성이라 하더라도 정치권은 정책 자체의 문제로 상황을 포장하리라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한 것은 탈원전 자체가 아니라 과정의 문제일 뿐”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오히려 이 프레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해법은 이 상황을 설명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것뿐이다. 이 정권 지지자들이 검찰 수사의 정치적 배경을 주장하기 위해 원전마피아-언론-보수정치를 하나로 묶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차기 대권을 꿈꾸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같은 얘기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이 9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전교도소를 나서며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무리한 징계 청구가 여당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되는 파국으로 귀결된 것은 더 이상 이런 전략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하고 여당이 ‘검찰개혁 시즌2’를 주장하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임과는 미묘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요일에 이례적으로 단행된 검찰 인사에 대한 평가는 이런 맥락과도 다소 맞지 않는 것 같다. 대다수의 언론이 인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자리를 지킨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정권을 향한 수사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이성윤 지검장이 했다는 일들을 보면 이런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상필벌’ 주장은 일리가 있다. 특히 이성윤 지검장의 경우는 일선 검사들의 비토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교체가 필요했다. 검찰 출신 민정수석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도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같은 중요한 위치에 정권에 반감을 가진 검사를 앉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해 검찰총장 징계 청구 과정에서 검사들 대다수가 정권에 등을 돌렸다. 이런 맥락에서 이성윤 지검장 유임은 ‘대체제’를 찾지 못한 탓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나 한다. ‘정치검찰’ 프레임이 불러온 후과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인사 과정에서의 ‘윤석열 패싱’ 논란도 마찬가지다. 박범계 장관이 인사 협의를 언급하며 윤석열 검찰총장과 두 차례 독대한 것은 실제로 실효성 있는 협의를 진행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난 사진을 법무부가 공개하고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언론에 보도된 여파로 일요일에 이례적 인사가 발표된 과정은 여전히 법무부와 검찰 간 충돌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와서 관계를 바로잡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박범계 장관이 “검찰총장은 미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고 야당 원내대표를 만나 “7월 인사에선 우려를 반영하겠다”며 달라진 대응을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프레임 전쟁’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백운규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을 “법원의 과도한 정권 눈치보기”라고 주장한다. 최근 이뤄진 임성근 판사 탄핵과 이 과정에서 불거진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과 이 문제를 엮은 것이다. 그러나 백운규 전 장관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그 이전에 감사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 3명 중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전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주장은 오히려 그 자체가 법원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로 해석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판사에게 했다는 발언은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회 탄핵도 언급되는 상황에서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임기가 만료되면 조용히 나가라는 취지다. 이 발언은 오히려 김명수 사법부가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온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어느 쪽에서도 욕 먹기 싫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보신주의가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눈치보기’란 비판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법원장이 임성근 판사 탄핵을 여당과 짜고 추진했다는 건 과도한 해석이다.

검찰의 수사도 사법부의 결정도 모조리 정파적 이해관계에 맞게 재단하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 정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런 진흙탕에서 문제의 본질을 따져 묻고 갈등의 전선을 사리에 맞게 재설정하는 역할은 언론이 감당해야 한다. 보수언론이 현실 정치의 들러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정권 들어서는 자타칭 ‘진보언론’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다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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