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김용균은 행복했다. 비록 원하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부모님께 뭔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기만 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던 용균이는 그렇게 행복할 줄 알았다.

참혹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렇지만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 발전소는 그렇게 젊은 노동자를 집어삼켰다.

용균이가 가고 난 후에도 유사한 사고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들 화력 발전소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했다. 사업주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발전소가 멈추거나 엄청난 벌금을 무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MBC 창사60주년 특집 VR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 시즌2 ‘용균이를 만났다’ 편

기술의 힘으로 무언가를 치유할 수 있을까? 젊은 노동자가 원한 것은 그저 평범하게 일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난 후 가장 먼저 김용균을 발견한 동료 이인구 씨는 그날 이후 투사가 되었다. 용균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아들 나이 또래의 김용균을 보낸 후 극심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이인구는 아내가 불안해할 정도다. 누구를 만나든 용균이 이야기를 하고 한없이 우는 그는 그럼에도 투사의 길을 선택했다. 누구도 봐주지 않지만 용균이를 위한 작은 박물관이 조성되었다.

용균이 엄마는 아들을 허망하게 보내고 투사가 되어야만 했다. 평생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은 남겨진 이들에게 극심한 고통으로 자리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은 더는 김용균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이는 누더기가 되어 통과되었다. 없는 것보다는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정치꾼들의 가족이 이런 황당한 죽음을 맞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MBC 창사60주년 특집 VR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 시즌2 ‘용균이를 만났다’ 편

삶에 지쳐 미처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VR로 생전의 용균이를 만났다. 20대 청년이 보낸 그 짧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력 발전소. 2인 1조가 기본 원칙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홀로 그 발전소에서 일하던 청년 김용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보통의 청춘들처럼 그의 휴대폰 속에는 그가 살아왔던 삶이 저장되어 있었다.

가고 싶었던 회사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었고, 20대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 그 안에 존재했다. 그저 잊혀가는 화력 발전소 노동자가 아닌, 우리의 모습이 그 안에는 담겨 있었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정한 부모님과 살가운 아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맞닥트린 첫 세상은 참혹함이었다. 용균이 자신도 이렇게 참혹한 작업 현장이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포기보다는 그래도 열심히 일해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던 그 청년은 허망하게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가버린 그를 기리는 일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MBC 창사60주년 특집 VR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 시즌2 ‘용균이를 만났다’ 편

미처 먹지 못한 사발면 하나만 남기고 구의역에서 사망한 19살 노동자 김 군은 이제 오는 5월이면 5주기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한국의 지하철,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스크린도어. 이를 수리하는 노동자는 스크린도어 뒤편에서 사망했다. 왜 노동자들이 계속 희생되어야 하는가.

단기간에 사회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재해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닌, 나와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아니라고 그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한다면 그다음은 곧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희생될지 모른다.

가상현실이란 기술로 하늘로 먼저 간 노동자와 마주한 그 시간. 힘겹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문제다. 변화는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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