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반복된 논란에 대해 위근우 대중문화평론가는 강사에게 오롯이 역사 강의를 맡기는 '교양과 지식의 외주화가 원인'이라며 “외주화가 반복되면 대중들은 TV를 볼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 평론가는 5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갑상선암 명의인 장항석 교수가 페스트 관련 강의를 맡았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의학사나 서양사는 다른 분야”라며 “설민석 씨가 하차하기 전부터 나온 비판이 '분야마다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 설민석 씨 혼자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6일 방송에는 최태성 한국사 강사가 나와 일본의 진주만 습격과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 5회 (사진=tvN)

위 평론가는 “제작진이 페스트나 판데믹 강연자를 찾았을 때 장 교수의 저서 ‘판데믹 히스토리’가 눈에 들어왔을 거다. 제작진이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취합해 방송하기보다는 관련 저서를 작성한 이에게 외주를 맡기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위 평론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방송국 입장에서는 외주화를 바꿀 이유가 없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논란이 일어도 시청률이 꾸준히 5%를 기록했다. 안정적이고 재밌다”며 “관련 서적을 내거나 기본적인 언변이 되는 강사를 섭외해 외주를 맡기면 시청률이 나오니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방송사 대부분은 교양 프로를 강연 프로로 구성하고 있다. 제작진이 직접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해서 만드는 프로그램보다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지식과 교양을 외주화하다가는 대중들이 TV를 볼 필요가 없다. 강사들의 강연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설민석 하차 이후 돌아온 tvN ‘벌거벗은 세계사’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장항석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교수를 초청해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 대해 다뤘다. 장 교수는 몽골군이 흑해 연안의 도시 카파를 침략해 성안 쪽으로 페스트에 감염된 시체를 투척하면서 유럽에 페스트가 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방송 이후 프로그램 자문을 맡은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해당 강연의 오류를 지적했다. 박 교수는 “카파 공성전에 대한 자료는 신뢰할 수 없는데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해석해 나쁜 것은 다 아시아에서 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켰다”며 “(제작진에게) 힘들게 자문해 주었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이름은 왜 넣겠다고 했는지”라고 지적했다.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진은 1일 “페스트 편은 관련 내용을 의학사적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라며 “방송 전 대본과 가편집본, 자막이 들어간 마스터본을 관련 분야의 학자들에게 자문을 받고 검증절차를 마쳤다”고 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제작진이)그런 자문을 구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앞서 ‘벌거벗은 세계사’는 클레오파트라 편에서도 곽민수 한국이집트학 연구소장에 의해 역사 왜곡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위 평론가는 “클레오파트라 편에서도 그랬지만 1회 방송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며 ‘유대인 시체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오래된 루머를 소개했다”며 “역사와 관련된 가설이나 야사 중 자극적이고 서사화하기 좋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 평론가는 강연 내용 검토를 소홀히 한 제작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저서 '판데믹 히스토리'에서 "흑사병의 발생에는 여러 가설만 있을 뿐 아직 정확하게 파악된 건 없다"며 '유럽 한 지역에서 흑사병이 나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몽골군의 침략으로 페스트가 퍼진 것처럼 소개했다. 위 평론가는 “제작진이 이 책을 제대로 읽어봤다면 전문가의 발언이 책의 내용과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그걸 안 했으니 방송국의 책임”이라고 했다.

5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하차하는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사진=KBS)

한편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는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진행자가 최경영 KBS 기자로 교체된다.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는 “2년여 시간 동안 제게 주어진 마이크를 소중하게 다루려고 했다. 취재현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늦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질 것 같아 무서워졌다”며 “세상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취재가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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