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8라운드 2차 경연은 한국과 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을 겸했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나는 가수다 공연은 평소와 달리 2천여 명의 청중평가단을 상대로 노래를 했다. 청중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야외공연이라는 환경변화는 노래하는 가수와 객석의 청중 모두에게 상당히 다르게 작용한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선곡과 가수들의 노래하는 스타일이 스튜디오 녹화보다 훨씬 크게 작용되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호주로 출발하기 전부터 조규찬의 선곡은 불안했다. 늘어난 청중과 야외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연에 나선 일곱 명의 가수들 중 조규찬은 가장 조용하고 잔잔한 노래를 불렀지만 그래도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다른 가수들보다 가시적인 임팩트가 약한 불리함을 안고도 조규찬은 호주경연 5위를 차지했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부른 장혜진이 6위, 아리랑을 새롭게 구성한 윤민수가 7위를 했다. 1,2차 경연 종합 득표율에서 결국 7위로 탈락하고 말았지만 2차 경연에서의 5위는 나름 희망적인 결과였다.

호주경연은 공교롭게도 1차 경연 5,6,7위가 거꾸로 1.2.3번의 무대 순서를 갖게 됐다. 복불복이 만들어낸 가장 얄궂고도 드라마틱한 결과였다.1번이 가장 불리한 순서이긴 하지만 기대치가 가장 집중된 해외공연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조규찬 뒤에 부른 장혜진이 비슷한 분위기가 중복되어 순서상 불이익은 가장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바로 뒤를 이어 등장한 인순이의 폭발적인 무대는 교민을 상대로 하는 야외공연이라는 특수성을 모두 커버한 완벽한 공략이었기에 장혜진에게는 더욱 불리했다.

노래 앞부분에 애국가를 샘플링하는 깜짝 놀랄 편곡 센스를 보인 인순이는 몇 번째로 불렀다고 해도 단연 호주공연의 최선이었다. 사실 인순이가 1차 경연에서 5위를 한 것도 순전히 노래만의 결과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국내의 이슈에 영향이 비교적 적은 해외에서의 공연은 인순이의 노래만으로 평가될 수 있었기에 당당히 그리고 압도적인 25%의 득표로 호주경연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박명수가 조규찬에게 탈락하지 않으려면 오버하라는 말을 했고, 그것이 현재 나가수의 문제점이랄까 딜레마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순이의 무대는 과잉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음악의 화력을 여과 없이 표출한 결과일 뿐이다. 그런 흥분을 가슴에 안고도 조규찬에게 7위가 아닌 5위의 호감을 보인 호주공연의 청중평가단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가수에게 새로운 숙제와 해결점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 같았다.

먼저 호주경연의 청중평가단은 해외라는 특수성 때문에 국내처럼 연령별로 기계적인 분류가 불가능했다. 또한 2천명으로 네 배로 늘어난 수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공개홀의 크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녹화장소의 문제는 제작진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녹화장소가 외부라면 스포일러 누출의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나가수 이슈에 스포일러는 들어있지 않다. 스포일러가 더 이상 나가수를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가수는 분명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나가수가 가요계에 끼친 긍정적 영향과 변화가 많지만 그와 함께 가창력 과잉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가수들이 나가수를 통해 그들이 가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치지 못하고 순위에 억압되어 경직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조규찬처럼 자신의 음악적 자세를 고수하려다가 최단기간 탈락이라는 폭탄을 맞게 되니 기존 가수들은 항상 음악적 신념과 탈락의 불명예 사이에서 시달릴 것이다.

나가수가 아무리 변한다 한들 서바이벌이라는 기본 특성이 지워지지 않고는 이 문제를 완전히 해소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한국 최고의 가수들이 단지 질러대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 역시 절실한 화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를 좌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청중평가단이기 때문에 이것의 변화부터 나가수의 진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 가능성과 필요를 호주경연의 결과가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나가수 호주공연은 인순이의 부활의 신호탄이었지만 조규찬의 선비같이 올곧은 신념도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 호주경연은 김연우에 이어 조규찬의 탈락이라는 서바이벌의 한계를 노출시켰지만 동시에 청중평가단 시스템에 대한 변화가 새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도 건져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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