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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4차전, 커브의 재발견[블로그와] 디제의 야구 이야기
디제 | 승인 2011.10.22 10:30

지난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최동원, 하면 떠오르는 것은 금테 안경, 롯데, 한국 시리즈 4승, 강속구 등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커브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탐낸 최동원의 강속구를 뒷받침하는 커브는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타자의 눈높이에서 떨어져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들었습니다. 역동적인 투구 폼에서 비롯되는 강속구를 기다리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대 타자들은 최동원의 느린 커브에 추풍낙엽처럼 삼진을 연발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했던 최동원이 혹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몰락하며 해태 선동열이 리그를 평정해나가자 대세는 슬라이더로 바뀌었고 1991년 제1회 한일 슈퍼게임에서 일본 투수들의 ‘마구’ 포크볼에 농락당한 한국 프로야구는 서서히 포크볼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선동열조차 자신의 짧은 손가락을 비관해 한때 손가락을 찢는 수술을 해서라도 포크볼을 장착하고 싶었다고 고백했을 정도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포크볼을 자유자재로 던지는 투수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각 팀의 어지간한 투수들도 포크볼을 던지게 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체인지업과 커터 등 다양한 변화구들이 자리잡으며 커브는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 2011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9회말 2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SK 박정권을 삼진으로 잡으며 롯데의 승리를 굳힌 롯데 마무리 김사율과 강민호가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각 팀의 주축 투수들이 커브를 사용하면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삼성 윤성환이 커브를 앞세워 14승으로 공동 다승왕에 오른 바 있으며 올 시즌에는 고속 슬라이더로 이름난 KIA 윤석민,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한화 류현진, 그리고 2종의 슬라이더를 보유한 SK 김광현도 커브를 섞어 던지고 있습니다. 신진급인 롯데 고원준과 LG 임찬규도 커브를 즐겨 사용합니다.

커브는 직구와 동일한 투구 폼으로 던질 수 있으며 팔꿈치에도 거의 무리가 가지 않는 변화구로 투수의 선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직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이 투수의 팔에 엄청난 무리가 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커브는 투수들이 장수할 수 있도록 돕는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커브를 노리고 공략하는 노련한 타자에게는 장타를 허용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직구 혹은 직구와 구속 차이가 적은 변화구를 노리는 타자나 경험이 많지 않아 수읽기가 부족한 젊은 타자에게 100km/h 남짓의 느린 커브는 다른 구종과의 구속 차이가 커 헛스윙을 유도하기에 적합합니다.

2011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에서 커브는 하나의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10월 11일 벌어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KIA 김진우는 SK 타선을 3.1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내년 시즌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타선 침묵으로 KIA가 완봉패당하면서 김진우의 호투는 빛이 바랬지만 전성기의 최동원을 연상시키는 낙차 큰 커브는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제 벌어진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커브가 승부를 갈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 박빙의 리드를 이어가던 롯데는 9회말 마무리 김사율이 2사 후 박재상에게 2루타, 최정에 볼넷을 내주며 2사 1, 2루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만일 김사율이 타석에 들어선 ‘미스터 옥토버’ 박정권에게 홈런을 허용한다면 역전 끝내기로 롯데가 시즌을 허망하게 마감할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볼 카운트 2-2로 맞선 6구째 김사율과 강민호 배터리의 선택은 의외로 119km/h의 커브였습니다. 허를 찔린 박정권은 한가운데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에 방망이를 헛돌리며 삼진으로 물러났고 롯데는 플레이오프를 홈인 사직에서 열리는 5차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박정권이 커브를 노렸다면 큼지막한 타구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직구와 포크볼이 주무기인 김사율이 결정구로 커브를 선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씁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 2011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롯데 4번 이대호가 SK의 바뀐 투수 이영욱에게서 좌중간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쳐낸 후 베이스를 돌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플레이오프 4차전은 커브의 위력뿐만 아니라 위험성까지 동시에 입증한 한 판이었습니다. 롯데가 많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1:0의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던 6회초 선두 타자 이대호는 구원 투수 이영욱의 3구를 공략해 좌중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롯데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대호가 공략한 이영욱의 투구는 111km/h의 커브로 한복판에서 바깥쪽에 걸치는 실투였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이대호를 되살린 한 방의 원천이 바로 커브였던 셈입니다. SK 이만수 감독 대행이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느린 공을 던지는 이영욱을 이대호 앞에 올린 것이 패착이었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커브 실투는 승패의 향방을 좌우했습니다.

오늘 사직에서 벌어지는 벼랑 끝 승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승리하는 팀은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손에 넣지만 패배하는 팀은 시즌을 마감하게 됩니다. 4차전에서 커브로 울고 웃은 SK 이영욱과 롯데 김사율도 다시 등판할 수 있으며 이외에 SK 정대현과 롯데 고원준 등도 커브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재발견된 커브가 다시 한 번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되어 승부를 가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디제  tomino@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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