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극이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동안 그 빈자리를 SBS 사극이 꿰찼다. 사극 명가로 불리던 MBC가 짝패에 이어 계백까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내고 있는 반면, SBS는 무사 백동수에 이어 뿌리깊은 나무가 이어 사극 본가의 자리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솟구치는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의 성군 세종의 한글창제 등의 주요업적을 다룰 것이라 역사공부가 절실한 요즘에 꼭 필요한 사극이라는 의의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장혁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이유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에도 밝혔듯이 무술사극의 흥행성을 감안한 것이 분명하다. 최근 사극의 경향은 확실히 전보다는 무술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무사 백동수를 통해 무술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 한 편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된 상태다. 그것이 사극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생각하는 것이 뿌리깊은 나무 제작진의 판단인 것 같다.

▲ SBS TV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포스터.<< SBS 제공 >>
그래서인지 한글창제의 성군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세종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젊은 세종으로 등장했던 송중기가 부왕의 철권정치에 따를 수 없는 갈등과 번민을 잘 표현했다면 한석규는 나오나마자 욕세종으로 흥미로운 반전을 이뤘다. 지금까지 사극에서 왕으로서 이런 파격을 보인 것은 동이의 숙종이 처음이고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근엄하기만 했던 왕이라 한들 매사에 점잖은 말투만 쓰지는 않았을 터이니 욕세종의 묘사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개연성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세종이 5회에는 똥지게를 지고 채소밭에 인분을 뿌리는 장면이 나왔고, 한가롭게 궁녀를 골려먹는 모습도 보였다. 젊은 세종으로 나왔던 송중기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이런 소탈한 모습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위대한 업적 뒤에 숨어있는 인간 세종의 면면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뿌리깊은 나무가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라 드라마인 이유를 밝힌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종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하고 흥미로운데 실제 드라마는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장혁 다시 말해서 무술에 치중하고 있다.

▲ SBS TV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포스터.<< SBS 제공 >>
장혁을 활용키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하려는 일들을 꽁꽁 숨기고 있다. 물론 몇 회 더 진행이 되면 세종과 밀본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세종의 업적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이라 보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버지인 태종의 검에 맞서 문을 중시하는 조선을 만들겠다던 젊은 세종의 모습은 단절된 상태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진행은 강채윤의 현재와 과거에 집중되어 있다. 회상을 통해 강채윤이 변방에서 어떻게 악착같이 살아남게 됐으며, 또 어떻게 진정한 조선제일검 이방지로부터 무술을 배우게 됐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핵심인물이자 가공의 인물인 강채윤에게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분량의 밸런스가 다소 불만이다. 또한 강채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윤필이 납치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출상술이라는 무술은 사실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홍콩 무협영화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한 과장도 흔한 일이지만 한글창제의 세종이라는 너무도 엄연한 실제와 성기는 요소가 없지 않다. 아무리 요즘 대세가 무협이고, 장혁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두 이유를 모두 납득한다고 하더라도 무사 백동사라면 또 몰라도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과도한 무협욕심은 세종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부조화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