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재인은 분명 쌍팔년도식 이야기다. 즉 신파라는 말이다. 21세기에 신파가 말이 될법한가 싶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드라마 주 시청층인 서민들의 삶이 고달프고 날씨까지 쌀쌀해지는 요즘 신파가 의외로 먹힐 가능성도 놓칠 수 없다. 막장 드라마가 욕하면서도 보게 하는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듯이 신파 드라마도 속 터져가면서도 보게 되는 흡인력이 있다. 영광의 재인은 지금 딱 그 신파주의보를 발령하는 중이다.

졸지에 가족을 잃게 된 재인은 그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었다. 유일하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보육원에 맡기고 떠난 한 남자를 아버지라고 믿는 것뿐이다. 그렇게 17년이 지나 어린 시절 딱 한 번 만났던 김영광과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러나 기억상실이라는 댐에 갇혀 있던 17년의 세월은 그 우연한 만남 한 번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급진전을 한다.

우연히도 희귀혈액형인 재인은 피가 필요한 응급환자 영광을 위해서 간호사 시험도 포기하게 된다. 이 착한 재인 앞에 등장한 신비한 존재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목걸이를 건네준다. 그것은 17년 전 재인의 아빠가 건네주지 못한 생일선물이었다. 바로 그때 17년간 재인에게 보여주지 않은 편지들도 한꺼번에 받게 된다. 편지의 발신자를 아버지로 굳게 믿고 있는 재인은 앙숙인 영광과 인우의 싸움을 말리려다 물을 끼얹은 사건으로 일주일 근신처분을 받게 되고, 그 기회에 편지에 남겨진 주소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재인이 찾은 때 마침 사채를 빌려 쓴 영광의 아버지가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다짜고짜 달려들어 소동이 벌어진다. 거기다가 장을 보고 돌아온 영광의 엄마와 엉겁결에 함께 싸우게 되는데, 결국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기 위해 인적사항을 말하면서 재인은 영광의 아버지 김인배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극도로 소심한 성격인 김인배는 재인에게 17년 전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네가 재인이냐?”만 반복하는데 곁에 있던 영광의 엄마 박군자는 가뜩이나 의심을 하던 차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결국 김인배의 해명이 없는 상황에서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 박군자를 비롯해 김인배 가족은 모두 재인을 배다른 형제로 오해하게 되고, 박군자는 표독스럽게 재인을 몰아붙인다. 그 과정에 김인배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재인은 자신의 처지가 서럽지만 아버지와 그 가족을 위해 발길을 돌리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집을 나서는 재인은 영광과 마주치면서 이 불편한 오해는 더욱 복잡하게 엮이게 된다.

만년 2군선수인 영광에게 새로운 동기와 용기를 심어준 재인을 은근히 마음에 두게 된 상황에서 배다른 동생으로 등장했으니 황당하기로는 박군자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욱 재인을 가족들의 홀대에 버려줄 수 없는 영광은 재인이 아니었다면 죽을 뻔한 사연을 말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인배는 모처럼 독한 결심을 하게 된다. 서재명에게 전화를 걸어 재인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놔야겠다고 한다.

그런 김인배의 결심을 순순히 들어줄 악인이라면 드라마에 등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예고에 나왔던 것처럼 김인배는 서재명에 의해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김인배의 죽음은 재인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며, 재인의 친엄마가 오랜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날 때까지 가족으로 믿게 될 영광의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아줌마표 캔디인 박군자와 재인의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전개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복수가 될지 아니면 억척스런 성공신화가 될지는 아직 작가의 선택이 남아있지만 재인의 이야기는 신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광의 재인은 3회에 재인을 종일 울렸다. 신파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라도 한순간 가슴이 찡해질 정도로 눈물의 조건반사를 학습시키는 것 같았다. 그 눈물바다는 이 드라마가 신파임을 주저 없이 밝힌 것이고, 그 신파주의보 1호는 17년 전의 진실과 영광의 가족과 재인이 갖게 된 불편한 오해를 밝힐 유일한 존재 김인배를 침묵시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영광의 재인은 신파의 특성대로 속 터지는 답답함 속에 재인의 눈물과 영광의 어설픈 수호천사로서의 분노가 볼거리가 될 것이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뿌리깊은 나무가 워낙 거대한 스케일로 대작의 위엄을 보이기 때문에 이 소소한 신파에 냉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에 신파는 유효하다. 뿌리깊은 나무를 꺾지는 못해도 1회 이후 적어도 계속해서 시청률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영광의 재인이 그 증거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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