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EBS 다큐 프라임은 1월 25일부터 6부작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방영 중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도 올해 안에 백신 접종과 함께 집단 면역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 코로나 팬데믹 터널의 끝이 보일 것 같은 시절에 다큐 프라임은 ‘코로나 이후’에 대해 말문을 연다.

첫 회, 언택트 생활 속에서도 새로운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적 동물'로서 다양한 창의적인 시도를 살펴본 다큐 프라임은 그에 이어 2회에서 우리 안의 코로나를 살펴본다.

EBS 다큐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6부작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도 코로나 환자들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여전히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감염된 사람들보다 많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과 우리는 더이상 같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안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혹 코로나를 직접 겪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건 아닐까? 코로나를 온몸으로 겪은 '전지적 코로나 경험자 시점'에서 본 세상은 어떤 것일까? 다큐는 코로나 이후를 논하기 위해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2월 한 종교단체의 집단 감염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확진자가 증가한 대구,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도움의 손길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하지만 당시 의료 일선에 있던 의료진은 입을 모은다. 운이 좋았다고. 그 운이 좋았다는 평가의 또 다른 이면에는 간호사들의 중노동이 숨겨져 있다. 대구만이 아니다. 방역의 최일선에서 자신을 던졌던 간호사의 목소리로 다큐는 시작된다.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영웅, 간호사

EBS 다큐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2부 ‘가장 평범한 사람들’ 편

환자 때문이 아니라 동료 때문에 버텼다는 유연화 씨. 그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음압 병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병상이 된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의료진을 코로나의 영웅이라 치켜세우지만 유연화 씨는 눈물을 흘린다. 대단한 일을 했다지만 코로나 병동에서 일한다고 밝힐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고 한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자신이 아니라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위험해질까봐. 자신이 집에 없어야 가족들이 안전한 상황,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출근을 할 때 마음이 가뿐해졌다고 한다.

의료진이라면 필수 장비인 PAPR(전동식 호흡 보호장치)는 밖의 공기를 빨아들여 깨끗한 공기를 공급해주는 장비다. 하지만 이것조차 제때 공급받지 못했다. 방역 체계는 수시로 바뀌었다. 안전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마치 전쟁에 방패막이처럼 세우는 병사들 같았다.

게다가 처음 경험해보는 감염병으로 인해 '총도 쏠 줄 몰라요'하는 경험 부족 의료진과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친 티조차 낼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동료들이 힘들까봐 참았다. 이른바 '전우애'로 버텼다. 과연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자식에게 '큰일 한다'며 기꺼이 응원해주는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라고 묻는다. 앞에서는 박수 쳐주다 뒤에서는 꺼려 하는, 세상이 자신들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가 연화씨를 무엇보다 힘들게 했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의 항변

이중적 잣대에 항변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일원이었던 60대 여성, 그녀는 항변한다. 왜 광화문은 막으면서 해운대에 모여든 2~30만 인파에는 눈을 감냐고.

광화문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앞으로 나 볼 생각마'라고 농담식으로 말하는데 화가 났단다. 내 손주가 살아갈 나라를 위해 더위도 추위도 감수하며 거기로 나선 건데, 손가락질 받는 게 억울하다. 편향이 아니다. 무모함이 아니다. ‘확신’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코로나는 재수 없으면 걸리는 병이다.

슈퍼전파자의 뒷이야기

EBS 다큐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2부 ‘가장 평범한 사람들’ 편

지난해 2월 18일 대구의 31번 확진자. 증상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시설, 병원, 마트 등을 돌아다녀 슈퍼 전파자로 이목을 끌었던 장본인이다.

그녀가 확진 판정을 받은 그날 이후 쏟아져 나온 수백 명의 확진자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조사과정에서 작성한 리스트의 지인들 중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녀를 만났다고 거짓 진술한 20대는 처벌을 받았다. 후에 그녀가 슈퍼전파자가 아니라 2차 감염자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미 슈퍼전파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평범한 가정의 주부였다는 31번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로 항변한다. 슈퍼전파자가 된 그녀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그로 인해 평범했던 그녀의 가정은 서로가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암보다 더한 코로나

확진의 무게는 깊다. 암보다도 더하다. 송파구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던 정효숙 씨는 7월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바 있었던 효숙 씨. 하지만 암이 걸렸다는 사실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그녀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암은 나 혼자 걸리면 되는 거였지만, 코로나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단다.

결국 남편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다니던 교회에서 2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왜 조심하지 않아서 걸렸느냐는 말, 부주의했다는 말들이 그녀에게 오래도록 깊은 상처로 남았다.

확진의 무게

EBS 다큐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2부 ‘가장 평범한 사람들’ 편

이렇게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넘어서기 힘든 벽을 만들었다. 이를 설치미술 작가 박카로 씨는 'A와 B의 경계'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해외여행 후 마포구 15번 확진자가 된 그녀. 2주간 자가 격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동 동선이 많았던 그녀가 우선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의 확진 결과를 알리는 구청 홈페이지에 그녀의 신상을 캐고 욕을 해대는 댓글들을 보며 공개처형당하는 듯했다.

별 증상이 없던 카로 씨였는데 병실에 도착하자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짜였는데 진짜가 되어버린 듯한 상황. 하지만 열은 약과였다. 그때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왜 동선을 숨기지 않았느냐는 항의, 내 얘기는 말아 달라는 부탁, 걸리는 것보다 일을 못 하게 되는 현실의 항의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 역시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마음 떨어짐 주의' 표시가 등장한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플라스틱을 안 쓰고 싶어도 모든 것이 일회용품으로 제공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행위에 죄책감이 들었다. 입원 기간에 안 쓰고 모았던 50개의 플라스틱 숟가락이 전자저울 위에 놓였다. 작품명, 죄의 무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 확진자

김지호 씨는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이태원 N차 감염자이다.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 대각선에 앉았던 친구로 인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10580번, 50일의 입원 일과를 기록으로 남겼다. 창문도 열 수 없도록 못으로 고정된 병실, 에어컨은 물론 환풍기도 비닐로 막았다. 복도에 샤워실이 있어 샤워 대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했다.

EBS 다큐프라임 <포스트 코로나> 6부작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겪어야 하는 '격리'는 참을 수 있었다. 구급차도, CT도 젊은 그로서는 모두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처음 겪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막연한 차별이나 혐오도 처음 겪어보았다. 퇴원하고 출근한 회사에서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그를 보자 다시 마스크를 썼다. 회사는 사과를 요구했다.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최일선에서 일하던 간호사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도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세상과 자신 사이의 벽을 절감했다. 바이러스보다 더 아픈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라 다큐는 진단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위험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시절, 백신도 치료제도 필요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쳐버린 사람들의 ‘마음’, 코로나로 인해 서로에게 벽을 느낀 사람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치료해야 할 숙제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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