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구정권 인사 청산론’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가는 측면이 있었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과 공천심사와 관련한 내부 갈등으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데다 대선에서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자리도 챙겨줘야 하는 등 ‘이런 저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찍히지만 그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연극인·탤런트 출신 문화부 장관의 ‘반문화적인’ 발상

하지만 그 발언의 주체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유 장관은 지난 1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등 5명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유를 몇 가지 들긴 했는데 거품 걷어내고 알맹이만 추리면 사실 간단하다. 이들이 참여정부 시절 ‘코드 인사’로 기용된 사람들이니,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나가라’는 말이다.

▲ 한겨레 3월19일자 사설.
이 대목에서 노무현 정부 때 ‘코드 인사’ 막겠다며 공공기관장 임기 보장 법안을 주도한 당사자가 한나라당이라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유인촌 장관의 ‘무개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문화부 장관으로서 ‘반문화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자(19일) 한겨레가 다소 과격한(?) 사설을 게재한 것도 아마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인용한다.

“유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철학과 이념이 다른 사람은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자신과 같은, 혹은 현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문화예술계 기관장을 맡기겠다고 한다 … 문화부 장관으로서 그의 소양은 이미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무리 소양이 부족해도, 일국의 문화부 장관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야 한다. 정치권력의 망나니가 되어 문화를 죽이는 짓은 해선 안 된다.”

유인촌 장관에게 ‘자제’ 촉구하고 나선 동아·중앙일보

▲ 중앙일보 3월19일자 사설.
사실 한 나라의 문화부 장관이 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기본개념이 없다는 것 그리고 ‘반문화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질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인터뷰했던 중앙일보가 유 장관의 ‘오버 플레이’에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겠는가. 오늘자(19일) 중앙일보 사설을 일부 인용한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관이 반복적이고 노골적으로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문제다. 임기제를 도입한 법 정신에 위배된다 … 아무리 색깔론이 일반적 정서라 해도 법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색깔인사를 퇴출시키는 문제도 법치에 근거해야 한다. 유 장관의 압박은 정작 물러나야 할 코드 인사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일부 관료 출신을 우선적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 동아일보 3월19일자 31면.
유 장관에 대한 ‘자제촉구’는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도 가세했다. 그만큼 그의 최근 행보에 문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자(19일)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의 <정연주를 내버려 두라>는 칼럼인데, 전반적으로 ‘문제 많은’ 칼럼이긴 하지만 적어도 유 장관과 관련해선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부를 인용한다.

“만약 새 정부가 지난 정권 사람들을 내보낸 단체장 자리에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임명했다고 치자. ‘코드 인사’로 맹공을 가할 수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해치는 매카시즘으로 몰아세워도 된다 … 새로 임명하는 후임자들은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최대한 고려해 인선하고 교체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지 말아야 한다. 유 장관은 벌써 ‘비리 폭로’ 발언과 같은 몇 가지 실수를 했다.”

지금까지의 실수만으로도 유 장관의 문화부 장관으로서의 자질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정치권력의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는 오늘자(19일) 한겨레 사설 첫 문장을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막말로 정치권력의 ‘망나니’ 노릇을 할 사람은 많다. 하지만 굳이 그 노릇을 문화부 장관이 앞장서서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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