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대종상 영화시상식이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배우의 드레스코드에 대한 논란이 너무 뜨거웠던지 대종상 레드카펫은 비교적 잠잠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후보나 수상자에 대해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대종상의 캐릭터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애초에 후보자로 올랐던 심은경이 시상식 참석이 불가하자 후보에서 제외되는 촌극이 벌어졌고,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류승룡, 류승범, 서영희 등이 후보자 명단에서 사라졌다.

여우주연상 부문 후보자에서 제외된 심은경에게 조연상을 주긴 했지만 과연 심은경이 그 상을 받고 기뻐할지는 의문이다. 아예 시상에서 모두 제외할 것이 아니라면 여우주연상 후보명단에서 뺀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상 주고 욕먹을 짓을 한 것이다. 그나마 심은경은 뭐라도 상을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배우들은 대종상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을지 그 타들어가는 속내는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올해 대종상은 고지전과 최종병기 활의 각축장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여우주연상은 블라인드의 김하늘이 차지했지만 남우주연상은 최종병기 활이, 그리고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최우수 작품상은 고지전이 가져갔다. 이 현상만 놓고 본다면 48회 대종상은 안목이 좀 좋아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쉽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류승룡의 자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중상을 양분한 고지전과 최종병기 활에는 겹쳐지는 배우가 있다.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떠오르는 얼굴이며 주조연이라는 역할을 떠나 두 영화를 기억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바로 류승룡이다. 과연 류승룡 없이 최종병기 활과 고지전 두 전쟁영화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두 영화에서 빛났다. 물론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황해의 조성하가 그럴 자격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류승룡이 남우조연상 후보자 명단에서 빠질 정도라면 대종상의 높아진 안목은 무효가 될 뿐이다.

남우주연상과 신인여우상을 배출한 최종병기활이지만 박해일과 문채원이 나란히 앉은 자리에는 류승룡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후보에 오르지나 않았더라면 류승룡도 그 자리에 함께 했을 것이다. 올 한해 한국영화의 흥행과 완성도를 이끈 최종병기활과 고지전을 동시에 출연하고도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낼 수 없었던 류승룡의 빈자리는 유난히 커보였다.

한 영화사 대표는 트위터에 “대종상 아직 있나요?”란 말을 남겼다. 그것도 대종상에서 상을 받은 제작사 대표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 말에 담긴 비웃음은 그대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 대종상의 현재를 상징한다. 류승룡을 비롯해서 류승범, 서영희, 심은경 등 행사 당일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된 당사자들의 당황스러운 입장에서는 “대종상 아직도 하나요?”란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고지전에서의 류승룡 대사가 떠오른다. “내래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근데 너무 오래 돼서 잊어먹었어”하는 대사다. 대종상도 너무 오래 돼서 영화제를 왜 하는 건지 잊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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