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의 스페셜 예능 바람에 실려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세가 기울면 불화도 저절로 생기듯이 저조한 시청률에 이런저런 논란만 보태졌다. 그 중 으뜸이 임재범 잠적에 대한 조작설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담당PD의 “임재범을 1초라도 더 담아야 할 판”이라는 코멘트만으로 조작에 대한 의심을 거두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다. 이렇다 할 1급 예능인도 없이 오로지 임재범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에 일부러 임재범을 숨겨놓을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조작설은 결국 해명하고 납득하면 될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드러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록큰롤대디란 별명이 붙은 임재범의 잠적에 대한 아주 경직된 시선이다. 음이탈이 뭐 대수라고 닷새나 잠적한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그것은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록커들은 너무 얌전하다. 김태원, 이승철 등이 한때 대마초 등의 이유로 무대를 떠나야 했던 적도 있지만 록의 본토인 영국과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세계적인 록의 전설들 중에 약물과 알콜로 요절한 사람들은 쉽게 찾아진다. 대표적으로 미국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 지미 핸드릭스는 27살의 아주 젊은 나이에 약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대표적 록그룹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 존 보넴의 약물과 알콜로 인한 죽음으로 해체됐다. 그 외에도 영미 록큰롤 역사는 수많은 일탈과 기행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마약을 용인하자거나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록은 결코 얌전한 음악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 엄친아를 높이 사는 경향이 짙지만 실제 영미 록사에 그런 엄친아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하게 표현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양아치’같은데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다시 임재범의 잠적으로 돌아가 보자. 임재범은 언제 어디서나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했었는데 길거리 공연에서 음이탈을 경험하고는 심각한 충격에 빠졌다. 그 충격과 혼란 때문에 임재범은 촬영팀을 이탈해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닷새 간 임재범이 얌전하게 참선하며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꼭지가 돌 때까지 술도 마셨을 것은 분명하고,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것이다.

임재범이 그토록 방황하게 된 것은 본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어렴풋이 짐작해본다면, 스스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믿었지만 갑작스런 음이탈로 인해 훈련과 열정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나이라는 것도 그를 힘들게 했을 수 있다. 사실 50의 나이는 록커로서 무리가 없을 수 없다. 문득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누구보다 자기 음악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가진 임재범은 그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오히려 임재범답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더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들로 해서 임재범은 카메라를 벗어났는데, 잠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방황은 방송에 적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면의 혼란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임재범이 잠적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제작진과 다른 출연진들은 더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임재범의 잠적 닷새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창조적 음악활동을 위한 치열한 모습의 하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록커나 단정한 복장으로 얌전히 앉아 노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록큰롤의 진가는 폭발할 듯한 음악과 그것에 스스로 몰입한 광기의 록커를 보면서 느끼는 해방감일 것이다. 일상과 무대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없을 것이다. 나가수에 출연한 임재범은 폭발적인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하였다. 그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면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자유를 느끼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는 평화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투쟁이다. 임재범의 잠적 또한 그런 치열한 투쟁의 하나가 아닐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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