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를 연행하고, 취재 과정을 얘기 안해준다고 유치장에 입감시켜버리는 정부를 가진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최근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를 연행해 가둬버리는 일들이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지난 4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싸움을 취재하던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가, 지난 9일 부산에서 희망버스를 취재하던 칼라티브이 김태영 피디 등 2명이 모두 현장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 갇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8일 오후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제5차 희망버스 행사가 열린 가운데 중구 남포동 광복로에서 경찰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이 언론인들 모두를 집시법 위반으로 붙잡아갔습니다. 해산명령에 동의하지 않거나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무단 침입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 언론인들은 모두 취재를 하다 연행된 것이었습니다. 칼라티브이 피디들은 경찰의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고 집회를 이어가던 시민들을 취재하다가, 미디처 충청 정재은 기자는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들어가 집회를 하던 신부님들을 취재하다가 연행됐습니다.

경찰이 사실 실수로 기자를 연행할 수도 있습니다. 워낙 현장이 복잡하면 기자와 일반 시민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2008년 촛불집회를 취재하다가,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취재하다가 두 번 경찰에 연행된 적 있습니다. 물론, 당시 경찰은 제가 기자임을 확인하고 바로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다릅니다. 경찰은 이들 언론인들이 기자와 피디임을 알고도 연행했고 심지어 유치장에 입감시켜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검찰 지휘를 받아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미디어충청 기자와 칼라티브이 피디들은 모두 경찰에 신분을 밝혔습니다. 미디어충청 정 기자의 경우 연행 현장에서 취재 완장과 기자증을 경찰에 보여주었지만 경찰은 ‘자칭 기자’라고 비웃거나 ‘신부님께 기도하세요’라는 막말을 하며 오히려 기자를 놀려대었습니다. 심지어 이 경찰들은 오랫동안 강정마을에 머물며 취재활동을 벌이던 정 기자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연행된 칼라티브이 피디들은 생방송 장비와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이들이 시위대인지 취재진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혹시 이들 언론인들이 군소 언론사 소속이라 차별이라도 받을까봐 제가 조사를 맡은 경찰에 수시로 전화해 이들은 제가 오랫동안 봐왔던 진짜 기자들이라고 확인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들 언론인들을 연행하고 입감시켜버린 이유가 뭘까요. 저는 경찰이 이들 언론사 기자들을 보복성 연행한 것 아닌가 의심합니다. 공교롭게도 연행된 언론인들은 꾸준히 경찰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취재를 해왔던 분들입니다. 평소 눈에 가시같던 언론인들이지요. 당해보란 듯이 연행하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시치미 뚝 떼는 것 아닌지 의심합니다. 또 집회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을 위축시켜, 국민들에게 이런 집회가 축소 보도되도록 의도하는 것 같습니다.

▲ 조현오 경찰청장 ⓒ연합뉴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집회를 취재하는 기자는 집회에 참여하는 시위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실수로 연행하더라도 경찰은 바로 사과하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찰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조현오씨가 경찰청장이 되면서 이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연행당한 언론인에게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조롱하고 유치장에 입감시켜 버립니다. 연행된 분들에게 물어보니 경찰은 하나같이 ‘왜 취재왔냐, 누구랑 왔냐, 뭘 취재했냐’ 등등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언론인이 이런 취재와 관련된 내용을 경찰에 말해줄 이유가 없지요. 그러자 경찰은 이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에 불응했다’며 입감시켜버렸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나 벌어지던 일들이 하나 둘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젠 집회 취재갈 때 연행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와버렸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2010년 우리나라를 ‘언론자유가 부분적으로만 있는 나라’라고 등급을 매겨 70위에 랭크시켰습니다. 중남미의 자메이카(23위), 아프리카 가나(54위)는 물론 이웃인 대만(48위)보다도 한참 아래입니다. 안타깝게도 언론 자유 순위는 더 내려갈 것 같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정감사 현장에 나와 국민과 언론인들 앞에 사과해야 합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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