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방식에 대한 논란이 갑자기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정책 토론에서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 부채에 대한 문제제기에 나경원 후보가 '민주당이 복식부기로 계산해 채무를 부풀렸다'고 반론하자 박원순 후보가 '단식부기는 구멍가게에서나 쓰는 방법이고 공공단체와 공기업은 복식부기를 써야 한다'고 다시 반론했고 거기에 나경원 후보가 '잘 모르시나본데 서울시는 단식부기를 쓴다'고 재반론하여 벌어진 일이다.

▲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범야권 박원순 후보가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시민들은 갑자기 또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실 나도 단식부기와 복식부기가 무엇인지 깊이 알 수 있는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이런 얘기를 잘 모르는 분을 위하여 그간 이런 저런 직업을 가지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으로나마 설명해보려고 한다.

이해를 쉽게 해보기 위해 문제를 단순화시켜 보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문제를 단순화한 것이다. 1억짜리 집을 갖고 있고 지금 지갑에 20만 원이 있으며 전체 카드 빚이 200만 원이고 그 중 이번 달에 갚아야 할 카드대금이 50만 원인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단식부기로 계산하면 지갑에 20만 원이 있고 이번 달에 갚아야 할 카드대금이 50만 원이 있으니 30만 원을 꿔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생각하는 수준의 회계처리다.

복식부기라면 1억 원짜리 집에 연도별 감가상각을 계산하여 정확한 자산규모를 파악하고 전체 카드 빚 200만 원을 부채로 계산하여 20만 원의 현금이 어디로 가는지를 다 기록해야 한다. 즉, 카드대금을 갚아야 하는 시점에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단식부기이고, 이미 카드를 긁을 때 지출은 다 됐고 자산, 현금, 부채 등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복식부기이다. 따라서 단식부기를 현금주의라고 하고 복식부기를 발생주의라고 한다. 그냥 그렇다는 것을 알아두자.

이제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의 주장 중 누가 맞는 얘기를 한 것인지 알아보자.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완전한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회계는 원래 단식부기로 관리됐다. 첫째는 단식부기라는 말이 복식부기를 따르지 않는 회계처리를 통칭하는 말인데 지방자치단체의 회계에 처음부터 복식부기 원리를 도입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복식부기는 기업에서 쓰는 방식인데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기업처럼 이윤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며, 셋째는 단순히 예결산을 심의하는 경우에는 지자체에서 이용하는 단식부기의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이 알아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식부기는 '꼼수'가 통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고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문제가 됨에 따라 90년대 말부터 일부 지자체에 시범적으로 복식부기 회계가 도입됐고, 2007년에는 당시 행정자치부에 의해 전면도입이 시행됐다. 그렇다고 지자체에서 모든 회계를 복식부기의 방법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관리 자체는 단식부기로 한다. 다만 복식부기의 방법에 따른 결산보고서를 따로 낼 뿐이다.

아마 이것은 복식부기를 통한 회계처리 방식이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역량 강화와 인원 확충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부분을 단기간 내에 보완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자체의 회계처리는 지방직세무공무원이 해야 할 것인데 이들은 지방세무행정에 대한 전문가들이기는 하지만 회계처리 방식에 관한 전문가들은 아니다. 일종의 현실적 어려움인 것이다.

게다가 지자체에 복식부기라는 회계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발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현실화된 측면이 있는데, 이는 사실상 국가 조직의 부패와 비효율성을 시장주의적 방식을 통한 공정함의 구현으로 보완하려고 한 이들의 일관적 방식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이 논쟁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관료와 시민단체, 국가와 시장이라는 대립적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충돌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복식부기를 지자체의 일반적인 회계원리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느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라고 봐야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가지 회계원칙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는 서울시의 부채 문제이다. 서울시의 부채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채를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기존의 단식부기 방식이 전체적인 재정 상태를 잘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도입한 회계원리가 복식부기 방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후보의 단식부기냐 복식부기냐, 채무냐 부채냐의 논쟁은 일종의 논점일탈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부채의 성격을 파악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다. 양측 후보의 공방이 단순히 빚을 줄이겠다는 주장에 그치는 결론을 내기 위한 것이라면 서울시의 빚이 19조이든 25조이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겠는가?

우리가 국가 재정에 대한 좌/우 논쟁에서 보듯 중요한 것은 현실에 맞는 재정정책이지 단순한 부채의 규모가 아니다. 물론 감세와 지방교부금 축소에 따른 지자체 수입의 감소가 심각한 문제이므로 부채의 축소는 시급한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행정구역개편과 같은 일종의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수준에서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책 토론을 위해서는 서울시의 빚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하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제발 선거판에서도 수준 높은 토론을 보고 싶다. 아직도 시기상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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