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지난해 10월 8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는 장 미쉘 바스키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현대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름을 듣게 되는 화가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유명 화가라고 하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장벽 앞에 선 1980년대의 스타 작가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 [롯데뮤지엄 제공]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등장하여 겨우 8년이라는 짧은 기간 3000여 점 작품을 쉴 틈 없이 쏟아낸 스타 작가이다. 그 짧은 작품 활동 기간은 유색인종으로서 장 미쉘 바스키아가 인종차별적 시선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 자신의 작품으로 저항한 기간이기도 하다.

낙서와 같은 문구와 현대 문화의 아이콘 같은 이미지들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그런 메시지를 반영한다. 전시 작품 중 가장 가격이 비싸다는 작품은 해부도 속 인물과 같은 인간과 소가 그려져 있다. 바스키아가 그린 동물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유색인종 자신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가 그린 피 흘리는 예수는 그와 같은 피부 빛깔이고, 당대 최고의 야구선수 행크 아론은 역시나 그와 같은 유색인종의 영웅으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전시회에 바스키아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한자리에 모여 찍은 사진이 있다. 모두가 백인인 동료들 사이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바스키아. 이십 대 감수성 예민한 흑인 청년이 백인들 중심의 예술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짚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가 가장 믿고 따랐다던 앤디 워홀조차 그가 인종차별에 민감한 그림에 천착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니, 그럴 수록 젊은 바스키아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도를 더해갔을 것이다.

담배 한 갑 사기 위해 그려준 그림이 단 일주일 만에 화랑에 비싼 가격에 전시되는 스타 화가,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바스키아는 1980년대 미국에서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유색인종이었다.

1920년대 흑인 청년의 좌절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넷플릭스 제공]

1980년대의 흑인 청년이 그럴진대, 1920년대를 살아가는 흑인 청년이 느끼는 사회적 좌절은 어땠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선보인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또 다른 흑인 청년의 좌절을 그려낸다.

영화를 여는 건 '블루스'이다. 우리나라의 민요가 '한'이라는 정서에 기반한 것처럼, 블루스는 노예로 살아가던 흑인들의 한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장르이다. 그리고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 분)'는 그런 흑인들의 한을 구현하는 블루스 장르의 대표적 가수이다. 첫 장면에 선보인 그녀의 소울 넘치는 음악에 흑인 관중들은 영혼의 정화를 느낀다.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위해 북부 도시 시카고에 등장한다. 트럼펫 연주자 레비(채드윅 보스만 분)는 마 레이니의 연주를 위한 세션의 한 사람으로 동행한다.

마 레이니를 비롯하여 세션들이 지나는 시카고 거리, 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백인이다. 백인들은 그들을 마치 범법자 대하듯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먼저 도착한 세션들은 녹음이 예정된 공간이 아닌 창고 같은 지하공간으로 안내되어 음반에 필요한 음악을 맞춰보도록 요구된다. 그들의 동선만으로도 1920년대 흑인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가 절감된다.

오거스트 윌슨이 쓴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답게, 영화는 지하의 세션 연습장과 마 레이니의 동선을 따라 오가며 소동극처럼 진행된다. 호텔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녹음실에 이르기까지 마 레이니는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자신의 유명세를 내세워 갖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몽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때로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내세우며 녹음 작업을 지연시키지만, 그런 마 레이니의 몽니 저변에 깔린 건 저들 백인들이 자신을 블루스의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불편한 자의식이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넷플릭스 제공]

그렇게 마 레이니의 해프닝과 함께 지하 녹음실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트럼펫,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세션들 사이에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늙수그레한 다른 세션들과 달리 아직 젊은, 마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 어울릴 법한 태도로 일관하는 청년 '레비'가 있다.

자신의 곡을 음반사에 선보인 레비는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마 레이니 저리 가라 하게 잘나갈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는 선배 세션들을 깔보며 마 레이니의 세션이 아닌 자신만의 악단을 꾸려 승승장구할 것이라 장담한다. 마 레이니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 스타일의 음악으로 녹음을 할 것을 제안하는 등 자신감 넘치는 레비와 선배 세션들은 사사건건 충돌하게 된다.

보이는 건 마 레이니의 녹음실 해프닝이지만,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말의 성찬을 넘은 갈등을 드러내며 결국 1920년대 흑인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 아웅다웅하던 선배 세션들과 레비. 선배들은 레비를 그저 철부지로 치부하지만, 알고 보니 레비에게 백인들로 인해 부모님을 잃게 된 슬픈 과거가 있었음을 알고 동지애를 느낀다. 나이도, 취향도, 다루는 악기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차별받는 유색인종이라는 지점에서 '블루스'의 정서 같은 깊은 상실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 초반 그저 '나대는 것'처럼 보이던 레비의 조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밟히고 싶지 않은 한 흑인 청년의 자기방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동지애는 마 레이니의 녹음 현장에서 무력하다.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한껏 대접받고자 하는 마 레이니의 횡포에 가까운 녹음 작업에서, 튀어나온 못과도 같던 레비는 결국 소외되고 주어진 기회마저 잃게 된다. ‘자신의 악보만 팔면 이제 고생 끝’, 연주자로서 승승장구할 거라던 청년의 조급한 꿈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져버린다. 그의 조증만큼이나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은 청년의 분노는 동료는 물론 자신을 자멸의 길로 이끈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넷플릭스 제공]

녹음실 해프닝으로 채운 영화는 그 안에 인종차별이 여전한 1920년대 사회의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번듯한 듯하지만 저마다 차별과 상실의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흑인들 내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흑인과 흑인 사이의 다시 갈라진 벽은 결국 한 청년의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후반부, 단돈 2달러 헐값에 팔라던 레비의 악보는 백인 뮤지션에 의해 녹음된다. 그 모습은 마치 8년의 생애 동안 어엿한 인류의 일원으로 흑인의 존재를 세우기 위해 싸웠던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작품으로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 풍미하는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늘 흑인 인권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던 채드윅 보스만의 유작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여전히 신산했던 1920년대 추락한 흑인 이카루스의 삶을 그려낸다.

영화 속 레비, 그리고 바스키아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흑인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했다. 그리고 생애 내내 그들이 몸으로 체감했던 차별적 삶에 날카롭게 반항하다 자신을 산화시킨다. 청년, 젊은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존재는 그런 열망을 불태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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