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없는 1박2일을 상상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도 못할 그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지만 뭔가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1박2일이 주는 즐거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강호동의 부재가 주는 위기감 자체가 1박2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용하는 바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정작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다섯으로 줄어든 멤버들이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자기 몫을 더 하는 것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5일장 탐방을 마치고 한 곳에 모인 1박2일 오형제에게 주어진 저녁미션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1박2일 제작진은 단점극복프로젝트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오형제들의 문제점 지적에 나섰다. 사실 시청자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제작진은 감싸는 것이 보통인데, 제작진이 직접 연기자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최고의 위기 속 1박2일은 더 이상 체면과 과보호의 온실에 안주할 수 없다는 나름의 의지 표명이었을까?

제작진이 지적한 각 멤버들의 단점은 엄태웅은 숫기가 없다, 이수근과 은지원은 상식이 모자라다, 김종민은 말을 하지 못한다 등이었다. 그리고 이승기는 음식을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사실 다섯 명 모두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실제로 극복 프로젝트는 엄태웅과 김종민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프로젝트라고는 했지만 그 짧은 미션 하나로 진짜로 두 사람의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종민의 단점은 끝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끝나버렸지만 엄태웅에게 주어진 숫기 극복은 희망을 보였다. 엄태웅에게 주어진 1분토론은 저녁미션으로 치러진 단점극복프로젝트의 핵심이 되었다. 1박2일에 오자마자 순둥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엄태웅이 아니었다. 사실 강호동이 있었다면 순둥이 캐릭터도 나쁠 것은 없지만 더 이상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순둥이는 민폐일 뿐이다.

1박2일 유정아PD와 벌인 1분토론은 엄태웅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첫 번째 주제였던 나영석PD에 대한 문제에서 엄태웅은 호동빠에서 영석빠로의 전향을 보였다. 그 과정이 흥미로웠던지 1분만 버티면 되는 토론을 한참을 지나서 종료시켰다. 물론 여자 친구와의 1박2일 여행에 대한 토론에서는 주제가 민감한 탓에 엄태웅이 우물쭈물하다가 실패했지만 이어진 이수근과 은지원 중 누가 더 무식하냐, 애완동물 기르는 것은 반대하는 여자 친구의 문제 등 이어진 주제에서는 엄태웅은 막힘없이 술술 토론을 끌어갔다.

이 미션을 통해 엄태웅은 더 이상 순둥이로 묻어갈 수 없는 1박2일에서 고유 캐릭터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앞서 오프닝에서는 조급한 진행으로 이미 순둥이가 엄태웅의 진면목이 아님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했듯이, 토론에서도 역시 엄태웅은 울컥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박장대소케 했다. 그 백미는 마지막 토론주제였던 바닷물은 왜 짠가하는 것이었다.

엄태웅은 바닷물이 짠 이유를 전래동화를 들어 설명했다. 그것에 대해 언론고시를 패스한 재원답게 유정아 PD가 그것은 전래동화일 뿐이다, 바닷물이 몇 퍼밀인지 아느냐 등의 논리와 지식을 요구했지만 엄태웅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전래동화를 무시하느냐, 그걸 알아야 짠 것을 아느냐는 등의 막무가내 대응과 함께 울컥하는 모습으로 녹화현장을 초토화시켰다. 엄태웅이 1박2일에 합류한 이후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강호동 없는 첫 번째 녹화에서 최대의 수확은 엄태웅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원래 잘하던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는 앞으로도 더 잘할 것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지만 엄태웅과 김종민이 고민이었던 1박2일의 짐을 절반으로 줄여주었다. 장터특집에서 보여준 조급한 진행과 울컥 태웅의 모습을 잘 발전시키면 다른 멤버들과 어울려서 이제는 1박2일의 맏형이 된 엄태웅의 자리를 분명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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