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우리 사회의 도드라진 변화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분노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위한 요구다. 당연하게도 이런 변화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Unbilevable>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 비해 조금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로서 2차, 3차 가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린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을 확인한 형사들의 조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보는 마리에 대한 평가는 그가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현장은 일반적인 성폭행 사건 현장과 달리, 깨끗했다. 물론 범인이 남긴 흔적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남자 형사 둘은 어린 학생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버린 아이. 그렇게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던 아이는 '라이즈 업'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자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성폭행 사건은 어린 마리의 삶을 완전히 흔들고 말았다. 두 남자 형사들의 압박에 어린 소녀가 흔들리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런 소녀를 도와줄 어른들조차 의심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도피였다.
자신이 당한 일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야 하는 현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자칫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협박에 성폭행 신고를 자진 철회하는 마리는 겨우 버티고 있는 삶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했다.
범죄자가 되면 자립 프로그램에서 제외된다. 이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피해자이지만 이를 숨겨야 하는 마리의 이 선택은 어쩔 수 없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자신을 위로해주던 친구들은 외면했고, 형사들은 무고로 고소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지역 언론까지 나서 마리의 얼굴을 싣고 거짓 신고자라고 비판했다. 일자리에서조차 쫓겨난 이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마리와는 사는 곳도 전혀 다른 캐런 듀발과 그레이스 라스무센 형사가 나서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던 두 형사는 유사한 성폭행 사건과 마주했다. 증거가 거의 남지 않은 이 사건은 캐런의 남편이 근무하는 경찰서의 라스무센 형사가 유사한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캐런과 라스무센은 두 사건이 동일한 범인에 의해 벌어졌다 확신했다. 그리고 군인 출신이거나 어쩌면 형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추적해 가던 두 형사는 집요하게 사건에 집중했고, 어렵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두 남자 형사들은 성폭행 피해자를 협박해 소송까지 벌여 500달러 벌금까지 물렸다. 물론 마리가 어떤 나락에 떨어졌는지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 여성 형사들은 피해자들을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렇게 사건에 집중해 결국 범인을 잡았다.
미국은 각각의 주마다 법도 다르고, 공조도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적용해 한 주에서 하나의 사건만 벌인 이 연쇄 성폭행범을 잡아내는 과정도 흥미롭게 담아냈다.
범인은 마리를 성폭행하고 체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거들이 존재했음에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용기를 얻은 범인은 보다 철저하게 증거를 제거하며 범죄를 이어갔다. 만약 마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추가 희생자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인 마리는 2차 피해를 당해야 했다.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나락에 빠진 그는 두 여성 형사들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시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15만 불의 합의금을 받았다. 더 많은 합의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마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였다. 마리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형사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야만 했다.
만약 마리 사건을 두 여성 형사들이 담당했다면 어땠을까? 두 남자 형사들은 적지만, 억울하게 성폭행 피해자로 몰린 사건에 더 큰 비중을 뒀다. 그런 사건을 일반화해서 여성은 성폭행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이 일반화의 오류로 피해자는 추가 피해로 인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성 형사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오직 사건에서 드러난 실체만 보려 노력했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이들이 많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시대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쓴 책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원작으로 제작됐다. 실제 범인은 327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실제 형사들이나 피해자, 그리고 기자들도 부정적으로 봤던 선고가 실제 내려졌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피해자가 아니라 성범죄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재판부로 인해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아동 성범죄자들에 대해서까지 관대한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높기만 하다. 선고 방식 자체가 달라 이 정도 형은 나올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이해될 수 있는 형량이 나와야 하는 시대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다. 원작도 그렇지만, 피해자를 다시 한 번 가해하는 방식의 볼거리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성폭행 과정이 등장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 여성들의 변화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8부작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