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까지 사전청약시 최상의 혜택을 드립니다! 4개월 이상 청약하면 중CM패키지를 최우선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1~3개월 청약시 PIB패키지를 최우선 제공합니다. jTBC는 창의와 신뢰의 마케팅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6일 오후 6시경.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가 대주주인 종합편성채널 jTBC의 매체 설명회(media presentation)가 열렸다. 일단, '매체 설명회'라는 그럴듯한 포장부터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비롯해 아가방 같은 아기옷 제작 업체까지 불러내 자신들에게 광고할 것을 '겁박'한 그 자리는 사실 '광고직거래 현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기 때문이다.

▲ 6일 jTBC 광고주 설명회 행사장 입구에서 jTBC 임원진이 광고주들을 맞이하는 모습. 한 광고주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있다. ⓒ곽상아

취재기자들을 막아서는 탓에, 몰래 행사장에 잠입했던 나는 jTBC의 노골적인 광고영업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개국드라마,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빼내온 스타 예능PD들을 홍보한 지 1시간 정도 지나서였을까. jTBC는 '광고판매정책'이라며 설명회 개최의 본래 목적이었던 광고 판매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jTBC가 6일 광고주 설명회에서 진행한 '광고판매정책' 프레젠테이션. ⓒ곽상아

▲ jTBC가 6일 광고주 설명회에서 진행한 '광고판매정책' 프레젠테이션. ⓒ곽상아

▲ jTBC가 6일 광고주 설명회 말미에 진행한 '광고판매정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10월 31일까지 사전청약을 하면 최상의 혜택을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곽상아

임현주 jTBC아나운서는 직접 파워포인트 자료를 이용해 광고주들을 향해 '합리적 가격체계' '차별화된 패키지 상품' '강력한 추가혜택' 등을 '광고매체로서 jTBC의 경쟁력'으로 설명하며 중소 광고주들을 위한 전용패키지도 준비돼 있다고 친절히도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이 프레젠테이션의 백미는 마지막에 준비돼 있었다. 갑자기 행사장 앞면에 마련된 화면에 '10월 31일까지 사전청약시 최상의 혜택!'이라는 문구가 뜬 것이다. 언론인이라는 아나운서는 이 문구를 소리높여 외치며 광고주들을 향해 '10월 31일까지 사전청약하라'고 반복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TV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들이 떠올랐다. 홈쇼핑 호스트들이 물건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호들갑을 떨며 '바로 지금 상담전화 해라' '준비된 물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10월 31일까지 우리 회사에 빨리 광고해라'는 말을 내뱉는 이는 쇼호스트도 아니고 광고영업사원도 아니다. 언론인이다. 그것도 국내 유력 언론사에 소속된. 참담함, 민망함 등 복잡한 심경이 뒤엉키니 얼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런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까. '10월 31일까지 사전청약시 최상의 혜택'이라는 화면을 보고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광고주들도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미있었기 때문일까, 너무 노골적이라 민망해서였을까. 그 많은 광고주들의 심중을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국내 유력 언론사가 '10월 31일까지 빨리 광고해라'고 하는 것이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 지상파 방송국에서 jTBC로 옮긴 김시규 예능국장, 여운혁 CP, 김석윤 CP, 임정아 PD 등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설명회의 클라이맥스였던 광고판매정책에 대한 설명이 끝나니 jTBC 신입사원들의 발랄한 공연이 시작됐다. 행사장 테이블에는 음료와 코스요리들이 배달됐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었기 때문. '광고주 여러분들이여, 신입사원들의 공연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시라'는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언론사인데, 광고주들에게 대놓고 '광고하라'고 겁박하고 신입사원들의 공연까지 보여주는 눈 앞의 현실이 너무도 참담했다.

광고주들에게 춤사위를 보여주는 저 신입사원들 중에는 언론인으로서의 포부를 가슴 가득 담고 있는 기자, PD들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광고판매정책을 반복해 설명하는 아나운서, 광고주 앞에서 춤사위를 보여주는 기자ㆍPD들. 자신들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줄 인식하고는 있는 것일까.

이날 설명회는 "우리가 돈을 써서 스타PD, 톱스타들 데려왔다" "몸값, 이적료값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그러니, 광고주 여러분들이여 우리에게 돈을 달라" 3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돈'이다.

6일 저녁, 예상치 않게 천박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저질 서커스 한 편을 관람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이 설명회를 필두로 시작될 종편의 광고 직거래 본격화로 인한 폐해는 발등에 떨어진 언론계의 현실이다.

▲ 이날 행사장에는 채널 편성 권한을 가진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 구성된 전국개별SO발전연합회 측이 보낸 화환도 눈에 띄었다. 현재 종편은 SO측과 채널배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곽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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