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 해였다. 내가 숨 쉬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 해였다. 2020년은 자발적, 비자발적 은둔형 집돌이 집순이의 대거 탄생이 이루어진 연도이다. 모임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달라는 당부의 문자가 수시로 전송되었고, 저녁 아홉 시 이후 밖에서 모임을 가질 수 없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물론 당부를 무시하고 여가와 취미를 즐긴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향했다.

나도 매년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만나던 친구들을 벌써 일 년이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다. 가끔 단톡방을 통해 안부를 전하고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조심조심 건강하게 살자는 말을 남기고 아쉬워하며 인사를 한다. 생각해보니 2020년만큼 ‘살자’, 라는 말을 많이 해본 해도 없다. ‘살자’와 함께 ‘건강하자’, 라는 말을 인사처럼 주고받고 있다. ‘건강’과 ‘살자’는 언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한 쌍의 단어로 만들어진 것처럼 찰떡같이 붙어 다니고 있다. 우울한 소식과 불안정한 소식만이 전해지는 요즘, 모두가 침울하고 가벼운-혹은 깊은 고독과 고립감-우울증을 앓고 있다. 모두가 괜찮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고립과 우울로 한 해가 지나갈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곧 좋아질 줄 알았다. 곧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되어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줄 알았다.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2021년에도 완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우울이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는 말이다. 괜찮지 않은 부정적인 상황이 길게 이어질 것 같다. ‘건강하게 살자’, 라는 말을 인사처럼 해야 하는 날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말이다.

우울한 상황이 길어졌다고 하여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요즘만큼 가족과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건강을 기원한 적이 없다. 또 우리가 주고받는 ‘건강하게 살자’, 라는 말처럼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의지가 담긴 말이 없다. ‘생명을 지니고 있다’, ‘숨을 쉬고 있다’, 라는 뜻을 품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말이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온기를 지닌 말을 나누며 괜찮아지고 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가 죽고 긴 우울에 빠졌다. 그때는 우울한지도 모르고 살았다. 가족에게도 슬프고, 아프고, 우울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예전과 많이 달랐다. 모든 물건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일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지만 달랐다.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다른 일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가족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살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아팠다. 그때 우리 서로 슬퍼서 미치겠다고, 고통스러워 너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가족은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걸려 깨닫고, 후회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아직도 후회되는 한 가지이다. 아버지께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00아, 라든가. 00아, 사랑한다, 라든가. 일부러라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가족에게만 인색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어렵다. 따뜻한 말보다는 쥐어박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먼저 보이고, 싫은 소리가 튀어나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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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야 하는 말은 미루지 말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다. 연말이지 않은가. 따뜻한 말을 주고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시기다. 미안하다는 말, 죄송하다는 말,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다.

23일, 오늘 생일이었다. 아침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축하 인사 문자가 친구와 제자한테서 들어왔다. 행복한 하루였다. 축복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행복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사람들이 곁에서 나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생일날 전후로 각종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기분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시기 힘이 되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생일 때마다 따뜻한 말이 담긴 짧은 편지와 삼만 원이 든 편지 봉투를 무심히 던져놓고 갔다. 오늘도 어머니는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삼만 원이 든 편지 봉투를 놓고 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사랑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면 된다. 나와 당신의 온기가 전해질 것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당신의 사랑의 온도, 말의 온도를 체크할 시기이다.

그래서 말한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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