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각종 게시판, 기사 댓글에 이상한 문구가 등장했다. 밑도 끝도 없이 ‘폐경 때문이다’라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댓글이 달렸는데, 이는 실제로 하이킥3에서 안내상이 반쯤 실성한 모습으로 기사에 같은 문장으로 댓글을 다는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물론 하이킥3의 인기가 전만하지 못한 탓인지 심각할 정도로 모방현상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관절 ‘폐경 때문이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모방까지 나온 것일까.

사연인즉 이렇다. 윤유선은 저녁반찬을 준비하다가 참기름이 떨어져 땅굴을 통해 옆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옆집 목욕탕에서는 마침 줄리엣이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기겁을 하고 놀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던 유선은 웬일인지 줄리엣에게 시선이 꽂혔다. 넋을 놓고 줄리엣을 훔쳐보던 유선의 모습을 발견한 안내상은 노발대발하지만 처남 윤계상은 역시 폐경으로 인한 잠시 충동장애를 겪은 것이니 이해하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안내상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고 급기야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한다.

잠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서지석과 박하선, 박진희 그리고 아들딸을 거실에 모아놓고 상황을 말하고 이것이 과연 폐경 때문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자기 혼자 미쳐 날뛰는 안내상의 말은 차분히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윤계상의 설득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다섯 명 모두의 지지를 받지 못한 안내상은 실성한 상태가 됐고, 모든 일을 폐경 탓이라고 자조하며 보낸다. 안내상은 이후 모든 일들을 폐경 때문이라며 자조하며 시간을 보낸다.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는 기사에 폐경탓이라는 엉뚱한 댓글을 단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일반 여성들의 폐경은 그저 늙어가는 징후로만 치부될 뿐이었다. 윤유선의 경우처럼 평균보다 몇 년 일찍 찾아온 조기폐경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폐경은 더 이상 아기를 생산할 수 없음을 말하는 일종의 모성 졸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것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평소 생리 중 이상심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남자이기에 조기폐경이 충동장애에 이를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 폐경진단을 받고 온 유선에게 안내상이 고급호텔 저녁을 마련하는 등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폐경으로 인한 심리변화가 그것으로 치유가 될 리는 없다. 안내상은 아니 남성들은 그 한번으로 감기보다 빨리 여성의 심리적 상태가 끝나기를 바란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어버린다. 그런 남자들의 무신경함 때문에 윤유선의 폐경증상은 좀 더 하이킥3를 통해 강조될 것 같다.

한편 학교에서는 자매결연한 캐나다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교사학생 합동 연극이 준비되는데, 그동안 기껏해야 한마디만 했던 박지선이 처음으로 긴 대사를 소화했다. 그리고 윤건찾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도 떼지 않았던 윤건이 처음 대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 박지선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연습이 한창인 때 교장이 들어와 명성황후 역을 박지선에서 박하선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그 순간에는 교장의 결정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외모가 명성황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설득력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지선은 자신의 외모가 그렇게도 부적합하냐고 울분을 토하고 연극에서 빠지게 된다. 그리고 박지선 대신 명성황후를 박하선이 하게 되자 드라마 속 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 역시도 “과연 박하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단아인현으로 유명했던 박하선이니 그 모습하며 대사톤이 박지선보다는 당연히 더 돋보일 수밖에는 없는 일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로써 박하선은 모태왕후의 고결한 이미지를 새삼 인증하게 됐다. 그와 함께 극중에서 서지석의 로맨스를 예고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저 박하선의 모태황후적 자태만 보고 감탄하고 끝낼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누가 봐도 박지선보다는 박하선이 명성황후역에 더 적합하다. 그러나 교장이 한참 연습 중이던 배역을 바꾼 것은 단지 외모만을 놓고 결정한 것이다. 박지선이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극의 성과를 높여야 한다는 목적 하에 박지선의 인격은 존중받지 못했다. 단지 외모지상주의의 문제만이 아니라 학교 최고 권력자의 전횡 또한 은유하고 있다.

하이킥3에 야동순재가 없는 것이 볼 때마다 아쉽지만 그 빈자리에 빼곡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거침없는 걷어차기가 채워지고 있다. 요즘 하이킥에는 숨은 윤건찾기보다 더 재미있는 숨은 이슈찾기가 있다. 그래서 일일불청하이킥이면 구중생형극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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