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박지성은 축구화를 벗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그의 이름이 끝없이 불려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손박대전'이라는 악성 축구 커뮤니티 문화가 원인이다.

‘손박대전’은 메시와 호날두 중 누가 최고인지 논쟁하는 '메호대전'에서 파생된 ‘키보드 배틀’ 문화다. 한국 축구 역사에선 누가 역대 최고의 선수인지 다투는 것으로 번져 박지성과 손흥민이 소환된 것이다. 칠팔십 년 대에 활약한 차범근까지 거론되며 '차손박 대전'이라 불릴 때도 있지만 차범근은 워낙 예전 선수이다 보니 잘 거론되진 않는다. 아시아 최고의 현역 선수로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그와 경쟁을 붙이기엔 10년 전 역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뛴 박지성이 제격이다. 둘의 커리어는 비슷한 경지에 있는 부분만큼 강점과 약점이 상반된 부분도 많아서 비교할 거리가 널려있다.

어느 분야든지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 G.O.A.T(Greatest Of All Time)를 가리는 건 흥미로운 토론 주제다. 역대 최고의 한국인 축구 선수가 누구인지 논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손박대전'의 경우 몇 가지 특수성이 얽혀 과열되고 있으며, 그 밑바닥은 이 시대 사회상의 보편적 환부와 유착돼 있다.

'손박대전'의 진앙지는 넷우익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 인사이드의 '해외 축구 갤러리'다. 저 게시판에 아무 시간에나 한 번 들어가 보라. 축구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오로지 손흥민과 박지성에 관한 단말마만 도배돼 있고, 박지성을 헐뜯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박지성의 현역 시절 업적이 폄하당하는 것은 물론, 외모를 비하하는 멸칭, 심지어 현역 시절 당했던 무릎 부상을 조롱하는 멸칭이 난무한다. 손흥민을 비하하는 글 역시 생산되고 있지만, 박지성은 10년 전 은퇴한 선수이며 손흥민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현역이다. 자연스레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손흥민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손흥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차범근, 박지성 같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구성하는 이들에게 존경심을 밝힌 겸손한 선수다. 문제는 선수 본인의 의중과도 역행하는 저러한 행태가 게토화된 일부 커뮤니티를 넘어 여타 축구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 SNS에도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메시, 호날두와 달리 박지성과 손흥민은 한국 사람이다. 국내 스포츠 선수들의 위상 평가는 소수의 전문가 평가를 넘어 해당 분야 마니아들과 보편적 여론에 의해 정립되는 경향이 크다. 즉, 관련 여론이 올라오는 사이트에서 고지를 점령한다면 그것이 선수들에 대한 평가로 직접 투입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여론 싸움에 과몰입을 조성하고, 자신들의 평가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 쳐서 해외 축구 커뮤니티 외부로 확산시키려는 동기를 준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패턴이 발견된다. 박지성을 폄하하는 이들이 하나 같이 ‘역사의 증언’을 참칭 하는 어법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박지성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다. 보고 하는 말이다.”라는 식으로 사실관계가 후세에 구전되며 미사여구로 변질되는 과정을 꿰뚫어본 목격자를 자처한다. 반대로 박지성을 호평하는 사람들은 박지성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 해 그럴듯한 말을 믿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라고 몰아간다. 한편으론 ‘팩트’라는 어법을 강박적으로 내세우며 예전 경기 평점과 통계 등 ‘기록의 조각’들을 유물 발굴하듯 끌고 와 짜깁기해 유통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 리거이자 빅클럽 소속 선수, 월드컵 신화의 주역 박지성은 마케팅 용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벤치만 지킨 선수, 국가 대표팀에서도 실은 다른 선수들이 모는 ‘버스’를 탔던 조역으로 뒤바뀐다.

이건 온라인상에 만연한 팬덤 문화, 각종 바이럴 마케팅 등 여론 왜곡 작업의 산물이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인터넷 사용자들이 여론을 왜곡하는 환경이 조성돼 있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같은 인식을 역이용해 여론 작업을 진행하는 경향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사실은 특정 팬덤과 바이럴에 의해 오염된 사실이며 ‘팩트’를 목격한 나의 전언만이 사실을 담지한다는 프레임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제기되는 반론은 눈먼 광신이나 세뇌된 지식, 하여튼 낙후된 것으로 취급하며 다수의 아이디로 크게 비웃으며 일축해 버리면 끝난다. 그 결과 기층 공론장 일각에서라고 해도, 불과 일이십 년 전 대다수 국민들이 목격한 사실들이 역사로서의 공인된 지위를 잃고 가공된 역사에 의해 대체당하고 폐기되는 일이 벌어진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 (AP=연합뉴스)

얼마 전 있었던 유튜브 축구 채널 ‘슛 포 러브’ 캠페인 사건은 상황이 어디까지 병들어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슛 포 러브’에서 박지성 등 축구계 인사들과 함께 축구계 인종 차별 반대 캠페인을 제작했고 후속 참가자를 지목하면 화답하며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박지성이 지목한 3인 중 손흥민이 있었다. 그러자 왜 참가를 강요하며 지목하는 방식을 취하는가, 현역 시절 인종차별적 응원가를 듣고도 수용한 박지성이 캠페인을 주도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 댓글이 폭주했다. 결국 ‘슛 포 러브’ 측에서 사과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저 사과 영상조차 박지성을 조롱하는 댓글로 뒤덮여있다.

현재 손흥민은 ‘케이 컬처’의 주력 상품 중 하나로서 소비되는 면이 있다. 오늘날 한국 내에선 케이팝 등 문화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버전의 세계화가 열광을 사고 있다. 이 열광의 핵심은 손흥민과 방탄소년단이 서구에 처음 진출한 이전 세대들과 달리, 동양인의 스테레오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구인들과 대등한 주인공으로 겨루고 있다는 감격이다. 헌신적인 조력자로 플레이하며 빅클럽에서 자리를 얻은 ‘언성 히어로’ 박지성은 득점에 주력하며 골게터로 뛰는 손흥민과 대조되는 면이 있고 박지성 안티 여론은 이 점을 집중적으로 야유하곤 한다.

박지성의 커리어를 부정하는 과열된 공격 뒤편엔 흡사 “그건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신이 한국인의 이미지를 잘못 퍼트린 것이다"라고 부정하며 손흥민의 이미지로 정화하려 드는 충동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인종 차별적 응원가를 겪은 당사자에게 인종 차별을 방조했다고 책임을 묻는 어긋난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작금의 세계화에 대한 열광은 서구를 향한 자격지심에서 자유로워진 현상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서구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서구인의 시선에 이입해 한국인인 자신을 바라보는 도취감과 자기혐오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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