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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이 건넨 흐린 빛의 희망[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12.22 11:55

[미디어스=이정희] 누적 조회수 12억 뷰를 기록한 네이버 웹툰 <스위트 홈(황영찬 그림, 김칸비 글)>이 이응복 연출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돌아왔다.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감독이 호흡을 맞춘 <태양의 후예>, <도깨비>와 <미스터 선샤인>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 <더 킹: 영원한 군주>에 이응복 감독이 합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로맨틱한 김은숙 작가의 필력에 아우라 넘치는 세계를 구축했던 이응복 감독의 연출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응복 감독이 김은숙 작가와의 협업 대신 선택한 작품이 <스위트 홈>이었다. 앞서 이응복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이 <비밀>이나 <연애의 발견> 등이었기 때문에 장르물인 <스위트 홈>의 선택이 더더구나 의아했다. 그리고 12월 18일 <스위트 홈>은 회당 제작비 30억의 대작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도깨비>에서 보았던 그 스케일 큰 연출은 그린홈을 배경으로 한 괴물에 사로잡힌 세계를 풀어내는 데 손색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연기와 호흡 역시 흡인력 있게 극을 이끈다. 

괴물이 나타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이야기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고등학생 현수는 홀로 그린홈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히키코모리였던 그는 그를 제외한 전 가족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재산마저 빼앗긴 채 '죽기’ 위해 이 아파트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죽기가 쉽지 않았다. 곧 죽을 거라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주문했던 라면 박스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간 현수가 발견한 건 핏자국. 그리고 그 끝에 애지중지하던 옆집 고양이의 머리통이 나뒹군다. 그리고 그 머리통마저 끌어당기는 괴물의 손. 현수의 문 앞에 찾아와 도와달라던 옆집 여자는 괴물로 변하여 그를 탐한다. 

그렇게 그린홈에 사는 이들이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린홈만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쇠사슬로 잠겨진 그림홈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주민들 앞에 영화 <미스트>의 마지막 장면 속 괴물들처럼 긴 촉수를 가진 괴물이 그들을 향해 팔을, 촉수를 날름거린다. 그래도 믿을 건 정부밖에 없다며 TV 앞에 모여든 이들 앞에 정부를 믿으라던 대통령마저 코피를 줄줄 흘리더니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 끌려 나간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누구라도 괴물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함께 살아가던 공동체의 일원이 변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상황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부두교에서 유래했던 좀비가 서양 영화를 넘어 우리 영화와 드라마에 넘쳐난다. <월드 워> 속 거침없이 떼로 뭉쳐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의 등장에 대해 눈 밝은 비평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즉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의 모습이라 진단했다. 

흥행작 <부산행>에서 떼를 이뤄 부산행 열차를 탈취하려 했던 좀비들. 대부분은 그 근원을 바이러스에서 찾는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한 인간 탐욕의 역사가 동물을 숙주로 하던 바이러스의 변종을 낳았고, 결국 인간 사회를 파멸로 이끌어낸다는 묵시론적 주제의식에 있어서는 일맥상통한다. 

바이러스는 오염이나 전염을 통해 퍼져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염되는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양면적 속성을 가진다. 그렇게 무작위적인 바이러스의 전염은 오늘날 대중사회가 가진 맹목적인 속성을 고스란히 내포한다. 

욕망, 괴물을 낳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그런데 스위트 홈 속 괴물들은 그간 좀비 콘텐츠가 가졌던 맹목적 탈목적성을 비껴선다. 드라마는 초반 괴물을 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임을 선포한다. 

현수의 옆집에 살던 여성. 고양이에게 자신도 먹지 못하는 비싼 먹이를 준다며 챙기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던 그녀의 어긋난 욕망은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도 안중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괴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을 극대화시킨 모습으로 나타난다. 손이, 혀가, 덩치가 저마다의 욕망으로 팽창한다. 

얼마 전 상영된 <#살아있다>처럼 대부분 크리처 장르물 속 주인공들은 그렇게 괴물로 변하는 자신을 제외한 타자들을 상대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스위트홈>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자신의 집을 두드리던 옆집 여성 괴물을 상대하여, 그리고 복도를 활보하는 괴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피하던 주인공 현수였다. 그런데 그러던 현수가 코피를 쏟는다. 그리고 혼절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코피를 쏟고 쓰러지고, 그리고 눈동자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하며 현수 안의 욕망이 뛰쳐나오려 한다. 그렇게 <스위트 홈>은 주인공 자신을 괴물의 '골든타임'에 던져 넣으며 욕망을 묻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의 시대이다. 거리의 모든 이들이 저마다 개성을 가진 괴물이 되어 활보하듯, 우리는 저마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을 살아가는 과정이라 여긴다. 그런데 바로 그 삶의 동인이라는 욕망이 '괴물'을 만든다니! <스위트 홈> 속 괴물은 결국 우리의 삶을 투사한다. 우리의 삶이 투사된 괴물, 기존의 탈목적적인 좀비가 반성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삶에 대해 한 발 더 들어가 묻는다. 

현수는 삶을 포기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었다. 현수는 가족과도 불화했다. 그런데 그 '죽어버려'라던 가족이 정말 죽어버렸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친지들은 현수가 병상에 누워있던 사이 그의 집 재산을 꿀꺽했다. 그는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가족을 잃은, 가족의 것을 잃은,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에 무방비했던 자신에 대한 깊은 분노가 괴물이 된 그의 내부에서 튀어 오른다. 

그런데, 아직 현수는 괴물이 되지 않았다. 그가 구하려 했던 아래층 아이들을 향한 '선의'가 그의 괴물화를 막는다. 아기 엄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백질 덩어리 같은 덩치의 괴물이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었을 때 온몸으로 막아선 건 아기 엄마였다. 그리고 괴물에 의해 바닥에 패대기쳐졌던 그녀가 괴물이 되려 한다. 지난봄 아기를 잃었다고 한다. 봄볕이 좋아서 산책 나갔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가파른 길을 달려 내려간 유모차는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래서 빈 유모차를 아이처럼 끌고 다니던 그녀는 결국 그 상실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 눈앞에서 다시 지켜야 할 아이들이 그녀에게 괴물이 되는 골든타임을 유보한다. 

저마다 짓눌러왔던 욕망이 괴물을 탄생시키지만, 모두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들의 욕망이 에스컬레이션하여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요'라며 아이들을 구하려는 선의에 자신을 맡긴 현수와 아이 엄마의 괴물화는 유보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건 괴물만이 아니다. 괴물이 아직 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괴물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 심지어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사람까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괴물과 괴물이 되지 않는 이들, 그들의 차이는 종이 한 장처럼 얇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가장 짙은 어둠도 흐린 빛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라며 시작한다. 우애령 작가는 말한다. 제비 다리를 분지른 것도, 고쳐준 것도 인간이라고.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친 제비 다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그 '다른 이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는 마음'의 측면에 드라마는 '흐린 빛'의 희망을 건다. 

그 흐리지만, 괴물이 되는 것조차 막아내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풀어내기 위해 <스위트 홈>은 고심한다. 괴물과 인간 사이에서 시청자들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이응복 연출이 인기 멜로물을 마다하고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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