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KBS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뭐 특별히 환경 문제에 대한 모종의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사회에 입문했을 때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고, 이후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사라졌을 때는 이미 시기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골프를 꼭 쳐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라는 위안으로 그냥 안 친다.

KBS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바야흐로 골프 붐이 불 때였다. 박세리가 첫 메이저 대회를 우승할 무렵이었던가. 주로 사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장, 차장들은 TV를 골프채널에 고정시켜 놨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지겨울 때쯤이면 기지개를 펴는 대신 골프 스윙 연습을 하는 간부들을 어느 사무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휴게실에서는 삼삼오오 골프 관련 담소가 꽃을 피웠다. 기자들은 노트북 화면보호기로 골프 스윙 가이드를 설치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술자리에서 골프를 모르면 대화에 끼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뉴스에도 이런 붐이 반영이 돼서 골프 관련 아이템이 상당히 유행이었다. “골프 문화 이대로 좋은가?” 이런 유의 아이템도 기억난다.

어린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골프를 쳐야 취재가 잘 된다.”, “취미가 아니라 일을 위해서라도 골프를 쳐야한다.”라는 식의 선배들의 진심어린 (실제로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충고를 듣고 대부분 서둘러 골프에 입문했다. 새벽잠을 아껴서 골프 연습장을 들르는 동료, 후배 기자들이 꽤 많았던 것이 떠오른다.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드디어 ‘머리를 올리는 날’은 찾아온다. 친절한 선배들은 아주 가끔씩, 아주 아끼는 후배들에게만 머리 올릴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머리 올리는 기억은 아주 강렬해 10년이고 20년이고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그 첫 경험담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선배가 후배의 머리를 다정하게 올려주는 데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체 홍보실 관계자들이다.

한 4~5년 차 쯤 되니까 기업체 홍보실에서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골프 치세요?” 어릴 때 친구들한테 “너 당구 몇 치냐?”라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하다. “저 골프 못 치는데요.” 그러면 당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치셔야죠.” 그리고 한 마디 더 물어보기도 한다. “부장 골프 좋아해요?” “몰라요.”

물론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기자들은 기업체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골프 부킹을 하고 스킨십을 가지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뭐 개인적으로 부킹하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고, 취재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후자의 논리는 생각보다 깊숙하게 기자들의 머릿속을 침투해서 종종 논쟁이 붙기도 한다. 골프 접대에 대해서 누가 비판하기라도 하면 “누가 돈을 내든 취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니냐.” 한 발 더 나가기도 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강용석 열사를 변호하면서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라고 일갈했던 것과 비슷하게 “골프 접대 받지 않은 기자, 돌을 던져라!”

골프 접대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엄격해진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속내는 다르지 않다.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을 뿐이지 간부들은 암암리에 기업체 접대 골프를 치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골프 좋아하는 간부들끼리 서로 ‘스폰 땡겨서’ 부킹해주는 것이 여전히 미풍양속이다. KBS에는 윗사람에게 골프 부킹을 얼마나 잘 해주는지 ‘부킹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은 간부도 있다니 말 다했다.

10여 년 전, KBS의 한 기자가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골프 예약 청탁을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다. 현직 검사장까지 연루됐고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애초 실명으로 세게 보도할 예정이었던 기사는 계속 방송이 연기되면서 힘을 잃었다. 당시 언론계 인사 특히 KBS 기자들도 연루돼 있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실명은 익명으로 바뀌었고, 언론계 문제는 한 줄 걸치는 수준으로 반영됐다. 여러 권력기관의 로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는 간부들의 접대 골프, 골프 부킹에 대한 인식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렇게 KBS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골프와 관련된 민감한 뉴스는 자주 우여곡절을 겪었다. 기사를 발제하고 취재하면 나가니 마니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2011년 KBS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100% 똑같은 우여곡절이 반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 9월 29일 저녁 KBS 스포츠뉴스에서 방송된 골프업체 '타이틀리스트'의 퍼포먼스 센터 개관 소식 보도. KBS 새 노조 중앙위원을 맡고 있는 모 기자는 특정 업체를 노골적으로 홍보해주는 해당 기사가 9시 뉴스에서 방송되는지를 문의했다가 채일 KBS 스포츠취재부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최근 KBS가 골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6명의 간부들이 동반해 골프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재벌그룹이 KBS에 협찬을 몇억 원 해줘서 고맙다고 KBS 측에서 마련한 자리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보도본부장, 국장, 주간, 부장 등이 총출동했다. KBS가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였는데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골프 비용은 이상하게 재벌이 댔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야릇한 스토리겠지만 기자들은 잘 안다. ‘일부’ 기자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얼마나 당연한 이야기인지를.

그러나 나에게 더 중요한 이야기는 이번 사건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최대 방송사인 KBS의 뉴스를 책임지는 보도본부 최고위 간부들이 단체로 특정 기업체의 접대를 받으러 주말에 총출동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나. 협찬을 따러 기업체를 만나러 갔다지만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골프 비용을 넙죽 받아들인 간부들은 ‘직업윤리’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라고 알고 있었던 재벌이 실제로는 우리 최고 간부들 6명을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진짜 ‘갑’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 기업에서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라고 스스로 부르려면 ‘직업윤리’에 대해서도 어떤 언론사보다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KBS는 보도본부 간부들의 단체 골프 접대에 대해서 이런 처분을 내렸다. “협찬을 해준 재벌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한 것으로 업무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간부들은 징계위에 회부되기는커녕 접대 골프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

이 접대 골프를 주선한 사람은 스포츠국의 간부다. 최근 이 스포츠국에서도 골프를 둘러싸고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골프용품업체가 경기도 분당에 ‘피팅 센터’를 만든다는 기사를 9시뉴스에 넣니 마니 하는 와중에 벌어진 사단이다. 난 처음에 피팅 센터라고 해서 무슨 공공 기관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간단하게 말해서는 대리점을 열었다는 뜻이었다.

이 기사가 9시에 나가니까 한 기자가 물어봤다. 나가냐고. 그런데 스포츠부장이라는 사람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뺨을 날렸다고 한다. 왜? 모르겠다. 민원 기사라서 꼭 넣어야 하는데 시비거니까? 그냥 싫어서. 그날 기분이 나빠서. 알고 싶지 않다.

이 사건들을 모두 골프 때문이라고 엮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사건들이 사전적인 단어 ‘골프’로 엮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고리들 때문에 골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MB정권 들어서, 정치인 김인규 사장이 KBS에 오고 나서 이 ‘골프’ 문제가 심각해졌을까. 아닐 거다. 원래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일이 터져도 자정 능력이나 자정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