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에게 세시봉은 효자인 동시에 스스로 넘기 힘든 자기 한계일지 모른다. 세시봉 특집은 심야 토크쇼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이상의 현상을 이끌었고, 그런 대박 성공은 다시 기약할 수 없는 우연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래도 놀러와는 꾸준히 음악 이야기를 담고자 애를 쓰고 있고 호시탐탐 제2의 세시봉을 노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대감만으로는 마침내 그 제2의 세시봉이 찾아오는가 싶었던 3대 기타리스트 특집이 준비됐다.

그러나 방송이 끝날 때쯤에는 그런 기대감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프로그램 앞뒤로 3대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조금씩 곁들이기는 했지만 놀러와 제작진은 애초부터 이들 3대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만을 원했을 뿐, 그들의 연주에는 큰 욕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팥소 없는 단팥빵 같은 어색한 맛을 내고 말았다.

김태원은 이미 예능 스타가 되어 충분히 토크를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생전 예능 출연이 처음이라는 신대철이나 놀러와가 처음이 아닌 김도균도 토크로 그들의 음악과 인생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방송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비쳐졌다. 물론 제작진도 토크 비활성화를 대비해 김종서의 자리를 마련해 에피소드를 추가했고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의 음악들은 더욱 큰 궁금증을 남길 뿐이었다.

특히 티아라 소연은 왜 그 자리에 초대됐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내 방청객처럼 앉아 있다가 어머니가 좋아했던 그룹이 백두산이라는 말을 하고는 별 다른 역할 없이 프로그램은 끝나고 말았다. 신대철, 김태원, 김도균 세 사람과 가장 근접한 나이의 이하늘조차 추구한 음악이 달라 딱히 끼어들 틈이 없는 상황에 걸그룹 멤버를 게스트로 앉혀놓은 것은 특집의 의미를 퇴색시킨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말을 적게 한 것이 가장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록음악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KBS의 톱밴드가 시청률은 낮아도 실력파 밴드들의 존재감으로 언론과 마나아층의 지지를 받아 점점 화제를 넓혀가고 있다. 어느 때보다 요즘 록음악에 대한 방송과 대중의 호감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록음악이 최고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편식이 심한 한국 대중음악계로 봐서는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는 국민할매 김태원의 예능에서의 활약이 큰 역할을 했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모든 환경들이 마침내 토크쇼에 3대 기타리스트를 모이게끔 만들었다. 물론 3대 기타리스트라고는 할지라도 록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타이틀이고, 그들만의 영예에 불과하다. 세시봉 특집에 나왔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이 전성기에 누렸던 대중적 인기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인지도의 차이일 뿐 그것이 음악적 우열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3대 기타리스트의 진면모를 시청자들에게 음악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의 전성기 때에도 없었던 3인의 합동 연주도 박완규, 임재범의 인터뷰로 BGM이 됐고 토크를 마치고 각자 솔로 연주를 한 것 역시도 인터뷰에 가려져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게다가 방송 말미에 그들의 무편집 연주 동영상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고 자막이 나왔으나 MBC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찾을 수는 없었다.

록밴드에 있어서 기타리스트는 보컬리스트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다. 대단한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들 3인의 연주의 특성과 차이점을 바로 알아차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3대 기타리스트를 모아놓고 감질날 만큼 짧은 시간만 연주에 할애하고, 그것조차 인터뷰에 물리게 편집을 해버린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나가수를 통해서 해묵은 논란이 된 문제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나가수만큼이라도 친절하게 무편집 영상을 제공하는 노력만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그렇게 만만의 준비를 다했더라도 세시봉과 비슷한 쇼를 기대했던 것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어차피 토크에 익숙지 않은 은둔고수들이라도 기타를 어깨에 맨 채 쇼를 진행했다면 결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3대 기타리스트를 모아놓고 기타 없이 입만 열게 한 것은 푸짐한 잔칫상을 차려놓고는 라면을 먹으라고 강요한 것과 다름없다. 배는 채웠지만 불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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