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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특별전’- 붓 대신 가위를 든 화가, 예술을 향한 성실한 구도자 마티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12.09 14:08

[미디어스=이정희]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면 오른쪽 눈의 경우 잘 안 보이기도 하지만 물체의 색이 바래서 보인다. 안 보이는 것보다 세상의 빛깔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검사할 때마다 울적해진다. 나이듦이란 세상에 태어나 누리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백내장 초기라지만 왼쪽 눈은 시력이 나와서 글을 쓰고 살만하니 다행이다 하고 살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나이가 들고 병이 생겨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 더이상 여의치 않아진다면 어떨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화가 앙리 마티스가 전해준다. 

지난 11월 1일부터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특별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앙리 마티스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도 학창시절 미술 시험을 보기 위해 야수파 앙리 마티스 하고 외웠던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야수'라는 정의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붉고 초록의 커튼이 드리워진 방을 그린 교과서 속 그림이 떠오를 것이다. 조금 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신의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는 <춤>이나, 가위로 잘라낸 자유분방한 푸른 여성의 나신들의 콜라주 작업인 <블루 누드> 연작 시리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붓 대신 가위를 든 화가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 <마티스 재즈와 연극> (이미지 출처=마이아트뮤지엄)

본인 자신이 화가라 마티스의 블루 누드 연작에 대한 세간의 폄하에 대해 예술가로서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던 윤석화 도슨트의 열정적인 해설을 도움받아 접한 <앙리 마티스 150주년 특별 전시회>에선 삶의 불꽃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가 앙리 마티스를 만날 수 있다. 

1869년에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앙리 마티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법률가가 되었다. 하지만 맹장염으로 인해 무려 2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던 그는 법과는 정반대인 미술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렇게 앙리 마티스의 일생에서 '육체적 고통'은 그에게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전시회는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야수파 앙리 마티스를 지나 노년기의 마티스에서 시작된다. 고흐 등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신인상주의적 그림부터 선과 색이 강렬하게 드러난 야수파로서 화가로 인정받았던 시절을 지나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사해 나갈 수 있었던 장년, 노년의 마티스이다. 

여기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춤>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사물을 화가의 시선으로 '각색'한 그림들이 새로운 조류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구상'이 대세이던 시절, 마티스가 단순화된 형태와 명쾌한 색으로 구성된 작품 <춤>을 선보인다. 당연히 그의 첫 시도는 아직 평단과 화상, 대중적 이해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화가로서 보다 안정적인 경지에 이르며 그는 <춤>을 통해 표현해내었던 작품 세계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 <마티스 재즈와 연극> (이미지 출처=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에서 가장 중심이 된 <블루 누드> 시리즈는 그러기에, 그에게 찾아온 병마로 인해 병석에서 작품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택한 불가피한 방식이라고만 보면 아쉽다. 도슨트의 강조처럼 누구라도 오려낼 수 있는 쉬운 작업이 아니라, 푸른 바탕의 종이를 대번에 잘라, 즉 이미 화가의 머릿속에 작품이 구현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예술적 도전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랫동안 앙리 마티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피카소가 앙리 마티스가 병석에 누워서도 가위를 사용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해 시기를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말년에 '가위를 활용한 콜라쥬'를 통한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보다 자유로운 도전은 전시회의 제목 '재즈'와 통한다. 구상화된 소묘에서 오블리스크 연작 과정을 통해 보다 단순화되고 장식적인 화풍으로의 전환, 그리고 석판화집에서 보다 추상화되어 가는 대상들의 등장은 화집 표지 '이카루스'를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작품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나면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가 그 어떤 구상화적 표현의 이카루스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모델들의 소묘로 시작된 전시회는 말년 'by 앙리 마티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로사리오 대성당으로 마무리된다. 이 전시회의 흐름은 우선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난 모델들의 데생이 로사리오 성당 벽면에 둥근 원으로 대체된 성모자상으로 이르게 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과정’이다. 

중단없는 도전

이 과정은 가장 적절한 포즈가 나올 때까지 모델들을 집요하게 관찰했던 앙리 마티스가 인간을 표현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이목구비를 '상실'시키는 작업에 이르는 '추상'의 탄생이다. 구체적인 표현 대신, 보다 단순화되고 선명해진 선을 통해 외려 앙리 마티스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화가의 눈에 비친, 화가의 눈으로 본 대상을 상실시켜 그림을 보는 이들의 주체성을 부여하는 '자유로움'을 향한 여정은 바로 미술사에서 추상의 탄생 과정에 다름 아니다. 로사리오 성당 벽면의 텅 빈 얼굴을 통해 신자들을 저마다의 성스러움에 다가가기를 앙리 마티스는 유도했다. 성모자상의 얼굴을 과감하게 생략한 앙리 마티스도 마티스이지만, 그런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프랑스 천주교의 예술적 유연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러기에 흑백의 단순한 벽에 비친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햇빛의 경이로운 조화라는 천재적인 예술 작업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 <마티스 재즈와 연극> (이미지 출처=마이아트뮤지엄)

이렇게 말년의 앙리 마티스는 젊어 캔버스를 통해 표현했던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확장해 간다. 석판화집을 비롯하여 스트라빈스키의 무용 작품 <나이팅게일의 노래> 의 무대 의상, 스스로 선정한 시인들의 작품집에 삽화, 그리고 로사리오 성당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방위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 간다. 2차원적 평면에 강렬한 색으로 표현되었던 마티스의 세계는 시의 해석을 통한 세계의 확장을 시도했으며, 무대 위, 그리고 건물의 벽면을 통해 3차원적 영역으로 한계를 뛰어넘게 된 것이다. 그런 모든 작업은 그가 두 차례의 암 수술을 하며 붓조차 쥐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은 그렇게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접했던 모더니즘의 발전, 그리고 추상의 등장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그런 미술적 이해를 넘어 평생을 병마와 우울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세상에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으려 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환희를 주는 작품을 그려내고자 하는 인간 마티스를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 마티스를 주저앉혔던 병마, 두 차례의 전쟁 그리고 개인사는 마티스의 그림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도 멈추지 않았던, 자신의 종교와 믿음이라 여겼던 예술을 향한 성실한 구도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더 생존했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마티스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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