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분명히 해야 할 것 하나. 사건의 실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현재의 용의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추호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있지만 아직 용의자일 뿐 범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경찰의 수사와 이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는 문제가 많다.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어제(16일) 밤 늦게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경찰과 언론은 마치 범인을 검거한 듯한 ‘소동’을 벌이고 있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경찰은 용의자를 검거한 것일 뿐 범인을 검거한 것은 아니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 … 검증 없는 언론보도

▲ 중앙일보 3월17일자 11면.
유감스러운 대목은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언론의 검증 없는 보도다. 쉽게 말하면 경찰이 발표하는 수사결과를 단순히 받아쓰는데 ‘급급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많은 네티즌과 블로거들이 지적했듯이 경찰이 정모씨를 용의자로 발표하면서 제시한 증거는 단 한 가지다. 정모씨가 사건 당일 빌린 렌트카에서 초등생의 혈흔 DNA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데다 DNA 흔적 외에는 다른 증거가 제시된 게 없다.

여기서 용의자에 대한 인권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을 다시 거론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경찰의 수사가 상당히 ‘조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러다보니 다소 ‘무리수’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아직은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당사자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언론에 공표를 하고 아직은 용의자에 불과한 정모씨를 범인으로 몰아가게 만든 배경이 무엇일까.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4월9일로 예정된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확정적이지도 않은 증거 ‘하나’를 가지고 언론에 섣부르게 발표하는 경찰 - 실적주의에 몰입한 나머지 오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총선을 앞두고 점차 ‘나빠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 동아일보 3월17일자 12면.
물론 용의자 정모씨가 ‘나중에’ 진범으로 밝혀질 수도 있지만 지금 언급하는 것은 그가 진범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가 진범이라고 해도 현재 경찰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용의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고, 그가 진범이 아니라면 그건 경찰의 수사 자체를 도마 위에 올려서 책임을 추궁해야 할 지도 모른다.

때문에 문제는 다시 언론으로 되돌아온다. 대체 그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의 발표만을 쳐다보면서 정모씨를 범인으로 몰고가는데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면 ‘범인’을 옹호한다는 인상을 받을 것 같아서인가. 경찰이 물증으로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언론 또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기본적인 물증’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그게 언론의 역할인 것을 … 지금 경찰과 언론을 보면 대체 누가 경찰이고 누가 언론인지 알 수가 없다. 물증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성급하게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고간 배경 역시 짚어야 하는 것도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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