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징계에 나서고, 검찰총장이 가능한 모든 법적대응에 나서는 꼴사나운 광경이 연일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드디어 입장을 밝혔다. 7일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방역과 민생에 너나없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에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는 모든 상황이 일단락된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타이밍이 앞당겨진 것은 최근 지지율 하락 국면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하락했다. 하락의 원인은 첫째가 부동산, 둘째가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이다. 부동산 문제는 정책적 사안이고 비유하자면 ‘상수’라는 점에서,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가 정치적 패착이 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추미애 장관은 여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파적 논리로만 봐도 대통령에게 법적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는 점에서 추미애 장관의 정치적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최근 결과를 두고 ‘콘크리트 지지층’ 일부가 허물어졌다고 진단한다. 진보, 40대, 호남, 여성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여당 사람들은 이 현상에 지지층의 ‘회초리’라는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몰아줬음에도 공수처 출범 등 권력기관 개혁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완료되고 공수처가 출범하면 지지는 회복될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심 이반의 성격을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지지층 일부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것에 실망한 것은 맞는 얘기로 보인다. 단, 그것은 징계를 어떻게든 빨리 하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이기는 싸움’을 하라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데 추미애 장관의 징계 청구는 법무부 감찰위 결론,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 인용 등의 결과를 볼 때 ‘지는 싸움’에 가까워 보인다. 법관대표자회의에서 ‘판사 사찰 문건’ 의혹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일시적으로 지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상상할 수 없는 졸전 끝에 5연패를 하고 앞으로도 만회가 쉽지 않다고 생각되면 ‘팬’은 야구장을 떠나는 것이다.

떠난 ‘팬’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는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기의 질을 높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 검사징계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은 징계위 결론을 그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자신의 법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드시 크게 패배한 장소에서, 당시에 진 팀을 상대로 다시 승리를 거둬야만 ‘팬’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라도 승수를 쌓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상황은 만회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자진사퇴를 전제로 추미애 장관을 교체하는 정치적 해법도 실제 모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정기국회 내 공수처 출범을 시사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해법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는 청와대가 절차적 공정성을 수차례에 걸쳐 공언했음에도 징계위 구성을 문제 삼으며 검사징계법에 대한 헌법소원까지 강행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치적 해법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자진사퇴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인데, 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응에 끌려다니며 상황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특히 대통령이 사과를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레임덕’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 외의 통제할 수 있는 변수를 활용해 이 문제를 연내에 정리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완력’을 쓸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응은 놔두더라도 공수처 연내 출범 등 권력기관 개혁을 완수하고 연말이나 내년 초 추미애 장관의 거취를 정리해 산뜻한 마음으로 재보선에 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9일 본회의에서 여당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할 것처럼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튼 이런 정국이니 국회는 강대강 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철야농성과 필리버스터를 주장하고 있으나 여론에 호소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결국 재보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최대 결집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잡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당은 공수처법 개정과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되면 극적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과 논란은 황당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9일에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 등 영남권 의원들은 반대를 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연이은 실책으로 분위기가 좋은데 굳이 옛날 얘기를 꺼내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를 상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과거와 결별하고 체질을 바꾸는 게 목표라면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일 때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이익이 목표라면 호재가 쏟아지는데 굳이 악재를 만들 필요가 없다. 국민의힘의 최근 분위기는 상황이 후자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안적 야당으로 변모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고 오직 오늘의 이익만을 좇는 일을 반복할 것이란 얘기다.

재보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권레이스가 펼쳐질 내년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사회적 차원에서 제기될 것이다. 지금으로선 각자도생이라는 ‘나의 이익이냐'와 개혁이라는 ‘우리 편의 이익이냐'가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투적인 대결구도다. 하지만 정말 필요해 보이는 것은 국가적 어려움을 돌파할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느냐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선까지 가는 길의 한 축은 ‘책임의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느냐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앞서 논한 일련의 상황은 양당 중 어느 쪽도 이에 대한 답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치적 성과는 양당 중 어느 한쪽이 가져갈 것이다. 되풀이되는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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