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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통곡보다 서러운 미소로 죽음을 맞은 경종부부[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1.09.30 11:29

글이란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최소한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 22화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혜공주와 부마 정종의 연기를 전하는 일은 뜨거운 의욕과 달리 문장을 만들기가 무기력해질 뿐이다. 마지막까지 살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경혜공주의 모습과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끊고 아내를 설득해야 하는 정종의 모습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비극적 장면이었다. 이를 연기하는 홍수현과 이민우의 열연은 마치 불과 얼음이 부딪치는 것 같은 뜨거움과 동시에 냉정함이 전달되었다.
 
광주를 찾은 김승유와 세령은 간만에 혁명의 긴장을 풀고 술잔을 기울이며 꿀맛 같은 잠시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승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곳까지 따라온 신면과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 정종은 품 안에 숨겨두었던 금성대군이 쓴 격문을 떨어뜨리게 되어 거사를 들키게 됐다. 신면은 그런 정종을 한양으로 압송해 세조에게 알렸다. 정종의 역모를 고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종을 미끼로 하여 반드시 김승유를 잡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성부를 찾아온 경혜공주를 순순히 정종과 만나게 해주었고, 김승유의 거처만 알려주면 정종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한다. 그것은 분명 신면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세령에 대한 집착이 김승유에 대한 열등감으로 웃자라게 된 신면으로서는 사리분간을 하지 못할 맹목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종은 그런 신면의 의도를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신면에게 김승유를 팔아서라도 정종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인 경혜공주 역시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편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더욱이 뱃속의 아기로 인해 모성이 극대화된 상태라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종의 말에 경혜공주는 아내도, 모성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부부는 자신들의 사별을 김승유에게는 숨기기로 한다. 하릴없이 돌아와 세령에게 정종의 의지를 전하는 경혜공주는 스스로 죽는 것보다 힘든 아내의 아픔을 절절히 드러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경혜공주는 시비 은금에게 “곱게 더욱 곱게 하여라. 마지막 보여드리는 모습이 아니냐”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편을 보내고자 경혜공주는 한성부의 옥부터 처형장까지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한성부 옥사에서 이 부부는 그런 마음까지 통했는지 죽음 직전의 사람들답지 않게 화사하게 웃으며 서로를 맞이했다. 그 모습이 통곡보다 더욱 서럽게 화면을 채웠다.
 
이 처절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기구한 부부는 처형당하기 직전 눈에는 빗물처럼 눈물을 쏟으면서도 이심전심의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정종은 우연히 경혜공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결코 많지 않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첫눈에 반해버린 공주와 기적같이 혼례를 올렸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가다가 마침내 공주의 남자가 된 그 짧은 행복이 너무도 다행이기도 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각오한 죽음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정종과 경혜공주의 마지막 표정은 사랑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감정에서 우러나는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명장면이었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그동안 이 드라마를 본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이 부부의 아주 특별한 이별은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혔던 장면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이탈리아 명작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처형을 위해 독일군에게 끌려가면서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숨바꼭질처럼 웃어야 했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마지막 표정이다. 아니 그보다도 어쩌면 훨씬 더 강렬할 수도 있다. 최소한 그때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몰랐지만 이 부부는 양쪽 모두 죽음을 알기에 그 아픔도 두 몫인 탓이다.

그런 정종과 경혜공주의 마지막은 가슴 벅차도록 슬펐지만 동시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죽음과 이별이 존재하지만 이들 부부는 슬픔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극단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이별이지만 내심 은근히 부럽기도 한 감정을 들게 했다. 홍수현, 이민우 두 배우는 죽음마저도 달콤하게 느낄 정도의 열연을 선보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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