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최소한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 22화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혜공주와 부마 정종의 연기를 전하는 일은 뜨거운 의욕과 달리 문장을 만들기가 무기력해질 뿐이다. 마지막까지 살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경혜공주의 모습과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끊고 아내를 설득해야 하는 정종의 모습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비극적 장면이었다. 이를 연기하는 홍수현과 이민우의 열연은 마치 불과 얼음이 부딪치는 것 같은 뜨거움과 동시에 냉정함이 전달되었다.
광주를 찾은 김승유와 세령은 간만에 혁명의 긴장을 풀고 술잔을 기울이며 꿀맛 같은 잠시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승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곳까지 따라온 신면과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 정종은 품 안에 숨겨두었던 금성대군이 쓴 격문을 떨어뜨리게 되어 거사를 들키게 됐다. 신면은 그런 정종을 한양으로 압송해 세조에게 알렸다. 정종의 역모를 고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종을 미끼로 하여 반드시 김승유를 잡고자 한 것이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편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더욱이 뱃속의 아기로 인해 모성이 극대화된 상태라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종의 말에 경혜공주는 아내도, 모성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부부는 자신들의 사별을 김승유에게는 숨기기로 한다. 하릴없이 돌아와 세령에게 정종의 의지를 전하는 경혜공주는 스스로 죽는 것보다 힘든 아내의 아픔을 절절히 드러냈다.
이 처절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기구한 부부는 처형당하기 직전 눈에는 빗물처럼 눈물을 쏟으면서도 이심전심의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정종은 우연히 경혜공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결코 많지 않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첫눈에 반해버린 공주와 기적같이 혼례를 올렸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가다가 마침내 공주의 남자가 된 그 짧은 행복이 너무도 다행이기도 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각오한 죽음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정종과 경혜공주의 마지막은 가슴 벅차도록 슬펐지만 동시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죽음과 이별이 존재하지만 이들 부부는 슬픔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극단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이별이지만 내심 은근히 부럽기도 한 감정을 들게 했다. 홍수현, 이민우 두 배우는 죽음마저도 달콤하게 느낄 정도의 열연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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