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원불교 교무] 사흘간 이뤄지는 선(禪)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은 앉아서 하는 명상과 더불어 뱀사골 신선길에서 걷기 명상시간을 갖는다. 원불교 지리산국제훈련원에서 여러 차량에 나눠 탑승한 선객들은 여의마을로 난 길을 내려가 천왕봉로를 타고 매동마을 앞길을 거쳐 산내면 소재지 로터리에서 우회전하여 지리산로로 접어든다.

만수천을 따라 달리는 길이 굽이굽이 아름답다. 가로수 단풍나무가지 길게 드리우는 너머로 바위 사이사이 시원스레 흐르는 강줄기가 물보라를 일으킨다. 계곡마다 기도터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손님을 맞이한다. 20분 남짓 흘러 반선교 곁 주차장에 차를 댄다.

머리와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살짝 당긴 상태에서 눈길은 정면 1.5~2미터 바닥에 둔 채 한 발짝 한 걸음 내딛는 동작마다 정신을 집중하여 발이 땅에 닿는 접촉을 느끼며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을 면밀히 알아채는 것을 일러 행선(行禪)이라 이름 붙인다고 일러드린다.

그게 아니라면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石立聽水聲)’는 화두를 궁굴려도 좋으며 또는 새소리, 수풀내음, 수려한 경관, 시원한 물의 촉감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더라도 무방하다고 인도한다. 다시 모이는 시간을 공지하자 제각기 포행(布行)에 나선다.

필자가 촬영한 지리산 뱀사골 계곡

맨 뒤에 서서 앞서가는 행렬을 바라볼 때 초로의 입선인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같이 갈 데가 있다고 이끄셨다. 매표소 오른쪽 길을 지나자 ‘지리산 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 뱀사골에 자주 오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다.

충혼탑을 넓게 두른 벽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7,287분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군인 1,231명, 경찰 3,342명, 민간인 2,714명 영전에 누군가 올려놓은 하얀 국화 다발이 애틋하다. 숙연히 합장 재배 올린다.

‘지리산지구 전적비’를 지나면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 2층으로 연결된다. ‘아! 지리산이여..’라는 공간에 빨치산 대원들의 무기, 복장, 소지품, 삐라, 사진 그리고 당시를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그 중 단연 시선을 사로잡은 건 토벌대 전투경찰 제18대대장 차일혁의 글이다.

“5천년 이어져온 우리 민족사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볼 때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의 대결의 역사는 극히 짤막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부상된 두 개의 조국! 그 조국을 위해 뜨거운 피를 흘렸던 이 땅의 젊은이들! 그들에게 있어 조국은 둘인가? 하나인가?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빨치산을 토벌했던 토벌대, 토벌대에게 희생된 빨치산도 같은 역사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과연 몇 사람이 이를 알겠는가? 지리산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왜 죽었느냐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 몇이나 있겠는가?”

전시실을 나와 와운마을로 향하는 신선길 중간에 작은 푯말이 서 있다. 바로 옆, 큰 바위가 서로 의지하여 절로 만들어진 석실에서 조선인민유격대원들이 소식지 및 사상교육 자료를 인쇄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과 북의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지워진 자들의 흔적이 지리산 곳곳에 긴 세월 쓸쓸히 남아 이따금 알아보는 이의 가슴이 먹먹하다.

매해 9월 18일이면 이름 없이 산화한 넋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이는 잊혀져 가는 이들에게 왠지 모를 마음의 빚을 진 나 자신을 향한 기도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출가자의 몸으로 지리산에 온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달 밝은 겨울밤, 훤히 드러나는 지리산 능선을 바라본다. 오래전 나는 그 산등성이를 걷던 야산대원이었을까. 아니면 총구를 겨누던 저격병이었을까. 오늘의 나는 까까머리 수행자가 되어 향을 사른다.

본래 맑은 한 물건은 어디 간들 물드오리, 육도세계 모든 숙업 돈필하고 오사이다. - 원불교 법공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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