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는 이래저래 MBC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심지어 타 방송까지도 보탬이 될 정도가 됐다. 시청률이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나가수라는 브랜드가 정착되면서 소재에 목마른 각종 예능에 훌륭한 이슈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가장 많은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나가수를 처음부터 만들었던 김유곤 PD가 놀러와를 맡게 됐으니 어쩌면 소재 이상의 숨은 뜻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주 놀러와는 나가수 탈락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꼴찌들의 역습’이란 주제를 내놓았다.

사실 쉽지 않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탈락한 후에 혼자 집에서 울었다는 김조한의 고백도 있었듯이 어쨌든 경쟁에서 꼴찌를 하게 된 기억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것이 당사자들로서는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나마 BMK나 김조한은 사정이 조금 낫다. 출연과 동시에 탈락하게 된 김연우나 김동욱의 입장이라면 놀러와에 선뜻 나가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탈락자들의 모임이라니 더욱 주저하는 마음이 컸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그렇게 나가수는 그들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이 발표한 노래는 아니었지만 나가수 출연을 통해서 각종 음원 차트를 올킬하는 최초의 경험들을 갖게 되었으니 가수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탈락의 상처가 별 것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픔만이 아니라 다른 한 손에 큰 보상도 쥐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나가수는 시작 전과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논란과 비판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서 길게 혹은 짧게 서바이벌의 압박을 겪은 모두에게 나름의 보상을 해준 셈이다. 그러나 나가수 출연에 아무런 보상도 위로도 없이 일방적으로 상처와 아픔만 갖게 된 유일한 가수가 한 명 존재한다. 그리고 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망설임 끝에 그들 모두가 놀러와에 나와 주었지만 끝내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없는 그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가수가 저지른 원죄나 다름없다.

바로 김건모다. 김건모는 원년 멤버다. 그때에는 나가수가 예능인지, 아닌지도 명확치 않았다. 게다가 입 가진 사람이라면 나가수에 대해서 비판을 해댈 뿐이었다. 그 자리에 당시 일곱 가수 중 최고참이었던 김건모는 남다른 책임감과 또 한편으로는 자괴감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은 나가수식의 서바이벌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 수조차 없었던 때에 김건모는 큰 판단착오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건모의 의도와 청중평가단의 해석은 정 반대쪽을 향했고, 김건모는 차마 생각지도 못한 꼴찌가 됐다. 그 상황은 당사자인 김건모는 물론이고 김영희 PD까지도 당황케 했다. 결국 재도전이라는 독배를 나눠 마셨고, 그 둘 모두 나가수를 떠나게 됐다. 김영희PD와 김건모에게는 악몽이 된 재도전 논란은 나가수에 나쁜 결과가 되진 않았다. 게다가 운도 좋았다. 잠시의 휴식 뒤에 재개된 나가수는 임재범이 출연했고, 논란과 비난은 감동과 찬사로 뒤바뀌게 됐다.


그리고 김건모는 자취를 감췄다. 그런 그에게는 여전히 나가수 최초의 탈락자이자, 규칙을 위반한 최악의 탈락자라는 오명만 남아 있다. 김건모는 유일하게 나가수를 통해서 얻은 것 하나 없이 잃기만 한 가수다. 또한 김건모 탈락의 충격은 오랫동안 이소라를 괴롭히기도 했다. 자진하차나 다름없는 이소라의 탈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그런 후에도 나가수는 씩씩하게 다 망했던 일밤을 일요예능의 무시 못 할 강자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김건모와 함께 시작했던 원년 멤버들 중에서 매번의 서바이벌에서 무사했을 뿐 아니라 국민요정, 비주얼 가수로 거듭난 박정현, 김범수 그리고 아깝게 마지막 7라운드에서 탈락을 했지만 행복한 밴드 YB 윤도현 세 명을 염두에 둔 명예졸업제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명예졸업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경연에 임하고 있다.

아직은 누가 2차 명예졸업자로서 나가수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청중평가단의 취향도 전과는 달리 좀 더 침착한 태도로의 변화도 보이고 있어 무작정 고음역 자랑으로 표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요즘의 나가수는 전보다 가수와 편곡자들이 훨씬 더 힘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박정현, 김범수 뒤를 이어 명예졸업자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놀러와 꼴찌들의 역습을 보는 동안 명예졸업이 있는데 왜 명예회복제도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던 김연우의 탈락은 확실히 인지도 부족이 큰 원인이었었고, 김동욱의 자진하차는 제2의 김건모가 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들 모두 나가수에서 그렇게 쉽게 탈락할 만한 실력은 아니다. 그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 놀러와는 명예졸업과 마찬가지로 명예회복제도에 대한 필요를 완곡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김건모의 명예회복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가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야만 할 숙제인 것은 분명하기에 그 숨은 뜻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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