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그야말로 ‘벼랑 끝 정치’다. 벼랑 끝에 내몰려 한 걸음만 물러나면 떨어진다고 믿는 위기의식으로 정치에 임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끝이 안 보이는 전쟁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정치는 더이상 대의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게 되곤 한다. 정치 행위자들이 오직 조직보위의 논리로 ‘내로남불’과 ‘나중에’를 반복하는 동안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아 버린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후보공천을 위해 당헌을 개정한 것은 전형적인 사례다. 서울시장까지 공석이 되면서 재보궐 선거의 몸집이 너무 커져버렸고, 이에 따라 재보궐 선거는 정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선거가 돼버렸다. 특히 최근 부동산 정책 이슈로 인해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빠르게 치고 올라온 상황을 감안하면 선거의 의미는 더욱 거대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비난을 감수하고 당헌 개정을 강행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과정과 판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난극복K-뉴딜위원회 국난극복본부 제2차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들의 위기의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수 야당(당시 한나라당)과 검찰, 언론에 무차별적 공격을 당하는 동안 지지자들이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잃었다는 것이다. 또한 적대세력들이 무차별적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앞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을 온몸으로 지켜야 하며, 정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원칙이나 대의를 무너뜨리는 일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런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달 발간된 『희생양 박해와 서초동 십자가』라는 제목의 책이다. 1980년대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반 기업에서 일하다가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사회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책을 썼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범우(필명) 씨의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이 당한 ‘박해’를 보수 연합의 ‘희생양 만들기 정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이번에는 ‘서초동 집회’를 통해 희생양(조국 전 장관)이 부활하고 승리했으며, 박해자들(보수정당·언론·검찰)이 자멸했다는 서사를 풀어낸다.

벼랑 끝에선 모든 싸움이 생존의 문제로 번역된다. 생존의 문제가 되면 정치적 대의나 원칙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두고 ‘기만’이고 ‘내로남불’이며 도덕적 파산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서 현실주의적 논리가 동원된다. 지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킨들 패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원칙을 어겨서라도 승리하기만 한다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냉혹한 정치판에서 이 같은 현실주의적 판단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해악이 되어 돌아온다. 평소 도덕과 원칙을 강조하던 정치세력이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로 일관할 때,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싹튼다. 진보세력의 위선적 행보를 폭로하고 조롱하는 행위를 자양분으로 삼는 ‘일베’라는 사회적 괴물이 ‘사람사는 세상’을 구호로 내건 노무현 정부에서 ‘성공하세요’의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렸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해치는 씨앗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원칙을 어겨서라도 승리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현실주의의 약속이다. 하지만 벼랑 끝이라는 위기의식은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을 끊임없이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청와대를 차지하고 대법관을 차곡차곡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웠으며 국회에서 절대 과반을 이뤘지만, 차별금지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민감한 쟁점들에 대해 정부여당은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더불어민주당이 단지 집권만을 목표로 하는 ‘집권기계’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위기의식 자체가 막연하게 상상된 것이므로 현실에는 벼랑 끝을 벗어날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들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위기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결정들을 검토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정말로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성인지 학습기회” 운운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 미투 고발자들, 차별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 지금도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이야말로 높고 가파른 절벽 끝에 매달린 존재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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