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온 말이지만 그래도 적어놔야겠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과 광우병이 전 국민의 주요 관심사였던 시점에 문화방송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당시 문화방송의 잘못된 정보가 국민의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해 혼란과 갈등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MBC는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서 대법원의 판결 내용과 취지를 ‘뒤엎고’ 지난 9월 5일 사고(社告)와 뉴스데스크 머리기사, 일간지 광고 등을 통해 ‘허위보도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19일 담당PD들에게 정직 3개월, 감봉 6개월,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액면 그대로, 보도에 일말의 오류도 허용치 않겠다는 그리고 그 오류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내겠다는, 순도 100% 무결점 방송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봐달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MBC의 입장이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청와대와 정권에 대한 사죄라는 사내 비판은 접어두자. 다만, 거듭 환기할 필요가 있겠다.

▲ MBC 김재철 사장 ⓒ연합뉴스
MBC 김재철 사장은 지난해 ‘쪼인트’ 논란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은 취임 직후 김재철 사장이 한 인사가 ‘큰집이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아가며 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재철 사장의 그런 구설에 비한다면 PD수첩 보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공영방송 MBC의 위상과 명예에 그렇게 심대한 타격을 입힌 일인지 납득할 수 없다. 김 사장은 법원의 판단도 구하지 않았다. 김우룡 이사장을 곧바로 고소하겠다고 해놓고는 차일피일 뭉개다가 그냥 덮어버렸다. 대법원의 PD수첩 판결 관련 입장에서 ‘문화방송의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문화방송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는 왜 그리 관대한가. 잘못된 정보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이번 PD수첩 제작진 징계에서도 ‘대체 누가 누구를’이라는 비판이 재연되듯이, 문제는 결국 관계이자 거기서 부여된 역할이다.

권력놀음에서 윗사람이 시키면, 혹은 이심전심으로 알아서 받들고 밑에 사람은 막무가내로 밟아대는 역할이 항상 있다. 윗사람 처지에서 그런 인물은 가끔 ‘대견하다’고 칭찬도 해줘야 한다. 이를 테면 “기개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렇다. 9월 22일 국감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이 진주·창원MBC 통폐합 보류를 무대 삼아 연출한 ‘사표 쇼’를 두고 “제가 그 입장에 있고 그렇게 기개 있는 사람이면 (사표 제출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공개적으로 한번 치켜세워줘서 충성심에 불을 지르려는 꼴이다. 하지만 속으론 생각한다. ‘내가 저 인간 위에 있기에 망정이지 나도 밑에 있었으면….’ 사실, 그 평가가 본질이다. 말만 잘 들어야지 윗분들한테 대들면 안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을 테다.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는 게 첫 번째 기준이다.” 지난해 신동아 4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김우룡 이사장이 MBC 사장 인선에 대해 한 말이다. 김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 취임 후 단행한 첫 인사에 대해서도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하라고 하니까 김재철은 청소부 역할을 한 거다”라고 했다.

지금은 그런 회사에서 단체협약 정상화 등을 위한 교섭 결렬 시 총파업을 단행한다는 노조 방침에 “파업 참가자가 100명이라도 해고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돈다고 한다. ‘내가 쪼인트 까여봐서 아는데’ 식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

다시, 대법원 판결에 대한 MBC의 깨알 같은 사과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막무가내 징계를 돌아보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원과 본질을 두고두고 되씹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일들이 하도 빈번하다고 익숙해지거나 둔감해져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는 9월 23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언론사에 관리자를 파견해 언론행위를 관리한 것은 독재정권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했다. 존경 받는 언론계 원로로서 정말 다듬고 다듬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멀지 않은 뒷날, 이명박정부에서 공영방송을 책임졌다는 인사들의 이력은 언론계 경력이 아닌, 정권에 복무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쪼인트’로 흥한 자, ‘쪼인트’로 망한다는 순리의 확인으로, 고스란히 되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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