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하승수 칼럼] 잘못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자, 위에서 지시해서 조직적으로 문서를 파기한다. 그리고 있는 문서도 없다고 우긴다.

이런 행태는 조직적인 기업범죄에서나 일어나야 할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98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당시에 필자가 활동하던 참여연대에서는 ‘정보공개사업단’이라는 기구를 꾸려서 여러 정부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과연 정부기관들이 제대로 법을 지키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국세청, 국가정보원, 경찰청, 국회 등 권력기관들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공개를 거부하면 소송도 제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에 필자에게 한 시민이 찾아왔다. 그 분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찰이 자신을 사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시민은 자신을 담당하던 경찰이 줬다는 ‘명함’을 갖고 있었다. 모 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명함이었다.

워낙 선량한 인상을 가진 분이 진지하게 하는 말씀이어서, 좀 더 사실관계를 파악해 봤다. 그랬더니 그 분의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민주화 이후에도 검찰이 ‘공안사범 사후관리지침’이라는 것에 의해, 조직적으로 민간인사찰을 하고 있던 것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민간인 사찰의 근거지침인 ‘공안사범 사후관리 지침’과 그에 근거하여 사찰을 한 자료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비공개를 했다. 그래서 1999년 4월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정보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1월 14일 1심에서 승소했다. 1심 판결이 뒤집히지 않는다면, 검찰이 조직적으로 해 왔던 민간인 사찰의 실체가 밝혀지게 되는 것이었다.

2000년 대검찰청 공안사범사후관리지침, 학원사범사후관리지침 폐지 발표자료(필자 제공 사진)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검찰청은 1심판결이 나던 날 ‘갖고 있는 민간인 사찰자료를 폐기하라’고 산하 검찰청에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를 찾아와서 정보공개소송을 진행중이던 1명의 시민에 관한 사찰자료만 빼고, 검찰이 갖고 있던 모든 사찰자료를 폐기한 것이다. 소송을 진행중이던 1명의 시민에 대한 사찰자료는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찰자료는 이미 폐기되었다는 이유로 공개받을 수 없게 됐다.

이처럼 검찰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하여 1심에서 패소하자마자 자료를 조직으로 폐기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벌이는 집단이다. 비밀주의, 관료주의에 찌들만큼 찌든 집단인 것이다. 검찰이 업무 중에 생산한 기록들은 국민의 것인데,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최근 2000년에 경험했던 어이없는 기억이 다시 되살아났다. 필자는 작년 11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소송중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특수활동비’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면서 ‘정보부존재’ 주장을 했다. 국민세금을 지출하면서, 아무런 정보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면서, 검찰의 이런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검찰 특수활동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대검찰청은 출입기자들에게 “검찰 특수활동비는 월별·분기별 집행계획을 세워 집행하고, 수사상황 등에 따라 추가 집행한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집행 자료를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배포한 것이다. 그리고 대검찰청을 방문한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는 일부 자료를 보여줬다고 한다.

국민이 제기한 정보공개소송에서는 ‘자료가 없다’고 은폐하던 검찰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물론 그 자료도 부실한 자료였다고 한다. 그래도 자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니, 필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없다’고 한 것은 명백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은 특수활동비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에는 ‘서울중앙지검에도 특수활동비를 배분했다’고 주장하면서 자료를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줬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00년의 검찰이나 2020년의 검찰이나 정보를 은폐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지금이 더 한 측면도 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법원에까지 허위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감추고 싶어서, 거짓으로 ‘정보부존재’ 주장까지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을 제대로 썼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검증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검찰뿐만 아니라, 법무부가 썼다는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검찰은 스스로 바뀔 가능성이 제로다. 지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국회가 지금 할 일은 2021년 예산에서부터 검찰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것이다. 그것도 못한다면, 국회의 존재 이유가 없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국회 스스로도 일부 남아 있는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특수활동비가 없다고 해서 수사에 필요한 경비를 못 쓰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예산 항목 중에 ‘특정업무경비’라는 항목이 있다. ‘특정업무경비’도 수사, 감사 등의 활동에 쓸 수 있는 돈이다. 다만, 특정업무경비는 증빙을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증빙을 남긴다고 해서 곧바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니, 필요한 돈이 있다면 ‘특정업무경비’로 예산을 편성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중에 진짜 기밀이 있다면, 그 부분만 비공개하고 나머지는 공개하면 될 일이다. 이런 해결책이 있으니 검찰예산에서 특수활동비는 아예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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