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월급은 다르지만 복지와 권리는 같아야 하지 않겠냐” 삭발식을 진행한 지 한 달여 만에 KBS 청소노동자들이 KBS 본관 앞 계단에 다시 모였다. 사측에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건 정상화된 출근시간(새벽 7시)뿐이었다.

12일 미디어스는 KBS 신관 로비에서 KBS 청소노동자 3명을 만났다. 주황색 긴팔에 조끼를 입은 이들이 걸어왔다. 춥지 않냐는 물음에 이들은 "더 추워지면 걱정이에요"라며 입고 있는 복장에 대해 설명헀다. 상의를 제외한 앞치마, 슬리퍼, 하의 모두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울에는 겉옷을 입냐고 물었다. "지금 이 복장이 겨울에 입는 옷"이라고 답했다.

12일 KBS 신관로비에서 만난 박유선 KBS비즈니스회 부지회장 (사진=미디어스)

KBS 청소노동자들은 1989년 창립한 KBS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소속이다. KBS비즈니스는 시설직은 정규직으로 미화원(청소노동자)은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의 비율은 전체 620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20여 명이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은 만 55세 이상이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KBS비즈니스지부(노조)는 사측이 만 5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는 2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있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행법을 이용해 55세 이상 노동자만 채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노사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1, 2차 조정이 진행됐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중지됐다. 노사는 고용안정 보장, 유급병가, 성과급 지급 등 10가지 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지만, 지난달 22일 김의철 KBS비즈니스 사장의 ‘계약 기간 3년 연장안’이 나온 뒤 중단됐다.

사측은 “회사 내부 사정이 있어 정규직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3년 계약기간 연장과 같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으로는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고용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며 파업을 결의, 지난달 2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98.1% 찬성으로 가결했다.

정규직 전환 요구 “임금만 다른 게 아니다”

박유선 KBS비즈니스회 부지회장은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복지만큼은 정규직과 동일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박 부지회장은 “28년 동안 명절상여금이 5만 원이었다가 2년 전 10만 원으로 올리고 지금 20만 원이다. 받을 때는 뭔지 몰라서 그저 고마워했는데 알고 보니 꼼수였다”고 지적했다.

KBS비즈니스 정규직은 근속수당, 가족수당, 상여금, 성과급 등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없다. 정규직은 식비로 월 10만 원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8만 원이다. 명절상여금의 경우 정규직은 1년에 두 번 160만 원씩 받는데 청소노동자들은 20만 원을 받는다. 안식년, 장기근속 위로금도 청소노동자에게는 해당 안 된다.

KBS비즈니스지회가 제공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자료

함께 인터뷰에 응한 청소노동자 A씨는 전 직장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처우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 오기 전에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휴가비 30만 원, 연차비 등을 받았지만, 전국 어디에도 연차비가 0원인 곳은 KBS비즈니스밖에 없다”며 “연차비가 없으니 퇴직금이 턱없이 낮다”고 말했다. 이어 “전 회사에서는 2년 6개월 일하고 퇴직금 500만 원을 받았는데 KBS비즈니스에서 6년 일한 언니의 퇴직금이 600만 원이더라”고 말했다.

매월 8만 원 지급되는 식비는 지난해 KBS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서 바뀐 부분이다. 명절 상여금, 복지비 카드 등 각종 수당을 제외하고도 필수품인 피복비(신발, 옷 등에 드는 비용)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 청소 노동자는 참다못해 KBS비즈니스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 “전임자의 옷을 물려 입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사비로 사서 입었습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맞는 작업복은 지급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너무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노동자는 “쓰레기를 모아 밟아야 하는데 지금 신고 있는 슬리퍼로 하면 정말 위험하다”며 “장화라도 지급해줬으면 좋겠는데 바로 옆에서 일하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은 파카도 주고, SBS는 신발도 준다더라. 우리는 2년째 이 옷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곳들 1년에 한 번씩 가디건, 장화, 장갑, 작업복 등이 싹 다 새로 나온다. 그런데 여기 와서 다들 자신의 가디건을 걸쳐 입고 일해서 놀랐다”며 “하복은 3년째 입고 있는데 겨울에 단벌로 버티기 너무 춥다”고 말했다. 박유선 부지회장은 “최저임금 받더라도 복지와 권리는 정규직과 동일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12일 KBS 신관에서 만난 박유선 KBS비즈니스회 부지회장의 인상착의. 보라색 앞치마와 신발은 사비로 구매한 것이다. (사진=미디어스)

“경영 어려울 때는 '우리', 잘되면 정규직끼리 성과급 나눠”

회사에 수익금이 나면 ‘성과급’이 나온다는 사실은 최근 알았다고 한다. 박 부지회장은 “수익금이 나와 성과급을 준다는 사실을 노조 일을 하며 알았다. 우리들이 청소해 환경점수를 높게 받아서 나온 성과급이라면 우리도 줘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사측은 ‘1년 계약직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럼 1년 계약 말고 무기계약을 맺자고 하니 그건 또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KBS가 자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경영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정규직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했다”며 “청소노동자들은 개별근로계약을 맺고 있어 성과급 대상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KBS 청소노동자들의 환경업무 관련 평가도 경영평가에 포함되지 않냐는 질문에 사측 관계자는 “다양한 평가 부문 중 환경업무는 일부”라고 답했다.

A씨는 “경영이 어려울 때만 우리, 좋을 때는 정규직끼리 성과급을 나눈다”고 했다. 노조가 제시한 ‘위생수당, 근로수당, 명절 복리비 인상, 성과급 지급’안에 대해 사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창사 이래 최대 적자가 예상되는 경영위기 상황에서 감내할 수 없는 요구사항으로 경영상황 호전 시 환경직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KBS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정진희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부회장은 KBS비즈니스 사측이 식비와 성과급으로 차별하고 있다면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부지회장은 “사측은 성과급이 계약에 따른 지급이라고 하지만 최근 대법원 판례들을 보면 모두가 받는 복리후생을 특정 직종만 받지 못하면 차별이라고 판단한 판례들이 있다”고 했다.

2017년 서울고등법원은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맞춤형복지 등은 직무의 성질, 업무량, 업무의 난이도 등과 무관하게 고용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직원에게 일률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수당이므로 이를 차별하는 것은 '차별적 대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KBS비즈니스지부는 11일 KBS신관 앞에 모여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KBS청소노동자)

KBS 청소노동자들은 결국 양승동 KBS 사장이 나서야 된다고 입을 모았다. KBS 사장이 자회사 사장을 임명하는 실질적인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나온 양승동 사장의 대답이 실망스러웠다고 짚었다.

박유선 부지회장은 “양승동 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타사에 비해 대우가 좋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는데 화가 났다. 우리는 자회사 소속으로 용역회사와 비교할 게 아니라 자회사와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기자회견에서 외쳤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 KBS는 서울대 청소노동자 투쟁, 공항 직원들의 투쟁은 다 챙기면서 정작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안 보이는지...”라고 말 끝을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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