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3의 테마는 패자의 역습이다. 역습이 통쾌하기 위해서는 패배할 때의 아픔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일의 역전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 아프고 쓰린 감정을 속일 수는 없다. 시트콤은 일단 웃겨야 한다. 그래서 하이킥은 시작하자마자 요즘은 코미디에서도 잘 하지 않는 슬랩스틱을 대놓고 하고 있다. 가장 웃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박하선부터 온몸을 던져 연기를 하고 있다. 중견 연기자 안내상, 윤유선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웃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웃는 것이 미안한 생각조차 들게 된다. 하이킥3 2화는 88만원 세대 백진희의 고시원 생활을 그리고 있다. 알량한 고시원비도 제때에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백진희지만 아르바이트비만 제대로 받았다면 최소한 1평짜리 보금자리만은 지킬 수 있었다. 3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 적어도 먹고 자는 것만이라도 위협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취업도 되지 않고, 그나마 아르바이트한 것도 임금을 받지 못해 기초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백진희가 가장 안쓰럽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고영욱이 쇠고기 장조림을 도둑맞아 분통을 터뜨릴 때 겨우 맨밥으로 식사를 하던 백진희가 사실은 심야의 반찬 도둑임을 알았을 때였다. 자신도 모르게 한밤중에 냉장고를 터는 모습을 보며 놀라는 백진희의 얼굴이 최고의 비극이었다.

백진희는 자신도 모르게 몽유병 환자처럼 자다가 일어나 주방의 냉장고를 뒤졌던 것이다. 학교 동아리 선배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에서 6개월 만에 먹는다면서 삼겹살을 게걸스럽게 먹었던 백진희에게 취업이니 학자금 대출 상환 등은 아주 먼 이야기였다. 꽃다운 여대생이어야 할 그녀의 잠재의식은 오직 음식에 대한 욕구에 지배당하고 있다.

물론 시트콤다운 과장일 것이다. 거리를 보면 여전히 대학생들은 사치스러워 보이고, 어디 하나 걱정거리라고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보면서도 가슴이 짠해져도 사실이 아닐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도피의식일 것이다. 20일자 뉴스에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살률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 베이비 붐 세대들 역시 참 힘들게 젊은 시대를 보냈다. 그러나 꿋꿋하게 잘들 버티고 어렵지 않게 그 긴 가난을 뚫고 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만 혼자 없어서 굶고 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배고픔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국이 OECD 11위가 된 현재는 그때와 전혀 다르다. 백진희처럼 고시원에서 배를 곯는 휴학생이 있는가 하면 돈을 물보다 더 헤프게 쓰는 대학생, 유학생이 넘쳐난다. 양극화시대의 가난은 낭만이 아니라 굴욕이고 좌절일 뿐이다.

시트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김병욱 감독이 이번 하이킥3를 통해 현실 속에서 그렇게 좌절할 젊은이들의 손을 잡아주고자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쌍수 들어 환영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 매분마다 웃음이 터지지만 차마 웃을 수 없는 이 지독한 리얼리티에 시트콤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연애 타령만 하는 드라마가 넘치는 현실 속에 이런 시트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시트콤적 상황이 아닐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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