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를 알리는 시보를 기다리며 숨죽인 채 TV 앞에 앉았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었던 그 무렵, 나는 친구들과 놀다가도, 밖에서 다른 일을 보다가도 밤 9시 이전에는 꼭 집에 들어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뉴스를 보기 위해서.

기자를 꿈꾸던 당시, 내가 봤던 방송 뉴스는 참 멋졌다. 마이크를 잡은 채 심오한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멋졌고, 쏟아진 현안에 대해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짚어주는 뉴스의 면면들도 멋졌다. 이와 함께, 뉴스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판, 해설을 담아 시청자들에게 넌지시 전하는 앵커들의 코멘트도 멋졌다.

▲ 서울 여의도 MBC사옥 ⓒ미디어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대학생이었던 당시 내가 봤던 MBC <뉴스데스크>는 참 멋졌다. MBC시민기자랍시고 한 손에는 모니터 노트를, 한 손에는 볼펜을 든 채 지켜본 MBC뉴스 안에는 적어도 이 사회가 있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MBC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래도 한 때마다 열심히 보던 뉴스’라는 정 하나로 겨우겨우 챙겨봤던 것도 이제 끊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꼬박꼬박 챙겨가며 봤던 MBC뉴스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방송 뉴스가 갖고 있는 힘과 영향력은 그때와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뉴스의 본질 자체가 달라졌다.

19일 <뉴스데스크>만 해도 그렇다.

신종 마약 더블K가 급속 확산되고 있음에도 제재가 없다는 뉴스, 전국의 CCTV가 4배 증가했다는 뉴스, 한 여성이 내연남과 남편을 살해했다는 뉴스 등 사건 사고 관련 뉴스들이 넘친다.

▲ MBC 뉴스데스크 9월19일치 화면 캡처

<연예가중계> <섹션TV연예통신> 등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법한 사안들도 이제 당당히 9시 뉴스의 중간 자리를 꿰찼다. 외국 국적의 아이돌이 등장하고, 태국에도 커버댄스 열풍이 불고 있고, 가수 인순이도 탈세 의혹을 받고 있고… 참 대단한 뉴스들 나셨다. 더군다나 MBC는 커버댄스 심사를 통해 K-POP의 인기와 실체를 확인하는 <커버댄스페스티벌 K-POP 로드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노골적인 자사 프로그램 홍보’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19일 하루 종일 진행된 국정감사 관련 뉴스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다. 이번 국정감사의 주요 현안이 무엇인지 확인하기에는 보도의 분량, 내용 자체가 적었다.

물론 <뉴스데스크>는 대규모 정전 사태와 관련한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쏟아진 발언들을 담아 한 꼭지를 보도하긴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뉴스데스크>는 이후 다른 꼭지를 통해서도 국정감사 관련 뉴스를 전했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의 막말에만 초점을 뒀다. 19일 하루 동안 각 부처에 대해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쏟아진 수많은 말들은 전파를 타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방송 뉴스를 통해 국정감사에서 나온 현안이 무엇인지 오롯이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지금 MBC뉴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반문해 본다. 시청률이 첫 번째 가치이고, 권력이 두 번째 가치일 것이란 심증이 굳지만 쉽게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MBC뉴스 그 안에 시청자는 없다는 거다.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에게 꼭 전해야 할 뉴스 보다는 흥미, 재미를 유발하는 가벼운 뉴스들이 넘치는 게 요즘 MBC뉴스다.

내가 한 때 좋아했던 MBC뉴스는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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