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광이라면 한국 것 외에도 미드, 일드를 섭렵하기 마련이다. 제작환경에서 너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미드와는 비교를 하기가 어색한 일이지만 그나마 일드는 한국 드라마와 비교하기가 수월하다. 객관적이라고 애써 우겨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결과겠지만 확실히 한국 드라마가 일본드라마에 비해 월등히 재미있다. 일부 막장 드라마를 빼고 말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일본 드라마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한국 드라마에 있다.

얼마 전 스파이명월에서도 그랬고, 액션으로 시작해서 액션으로 끝났던 CGV 제작 소녀K 역시도 그랬다. 스파이쯤이나 되고, 킬러쯤이나 되는 여배우들이 어쩐 일인지 달리기는 거의 경보수준이다. 아무리 카메라 워킹으로 커버하려고 해도 기본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이 꼭 여배우들의 문제라고 하기는 야박한 일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한국 여배우들의 달리기는 잘해야 ‘나 잡아봐라’ 수준이다.

반면 일본 여배우들은 그렇게 예쁘게 달리는 일이 없다. 여배우의 본능을 망각이라도 한 것인지 죽자 살자 달린다. 슬퍼서 달리건, 범인을 쫓기 위해 달리건 일본 여배우들의 달리기에 예쁜 척은 없다. 작가가 달리라는 지문을 넣을 때에는 거기에 필요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 일본은 드라마의 아주 많은 부분이 수사물로 채워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여배우들도 그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의 여배우는 그렇게 씩씩하게 달릴 일이 도무지 없다.

최근 드라마 중 최고의 액션 드라마로 손꼽히는 아이리스를 봐도 극중 두 여배우 김태희, 김소연 모두 달리기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복서 이시영은 달리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사실 해양 구조대 임무를 맡은 여경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시영이 아니라 다른 여배우였다면 과연 평지도 아니고 백사장에서 그렇게 제대로 달리기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인물 설정상 무술 고단자로 나오는데 복싱으로 단련된 이시영이라면 실감나는 격투신 역시도 기대할 수 있다.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남자 성격인 여경으로 나오는 이시영은 동료 여경과 농담을 나누다가 겁을 주기 위해 주먹을 쭉 내미는 장면이 나온다. 복싱을 해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주먹 쥐는 것 하나부터가 여느 여배우랑은 다르다. 여배우의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무시무시한 느낌은 없지만 제대로 꽉 쥔 정권 자세가 야무진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달리기부터 주먹 쥐는 것까지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한 디테일을 갖춘 이시영은 한마디로 액션에 최적화된 여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요즘 로맨틱 코미디의 범람 속에서 여배우들은 전과 달리 망가짐을 선택하고 있다. 이시영은 그 트렌드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작년 부자의 탄생에서 무식한 재벌 딸로 나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망가짐으로 여배우들의 파격을 자극했었다. 단지 다이어트가 아닌 정규 시합에 나갈 정도로 강단 있는 이시영은 분명 포세이돈에서 필요로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충분히 살려낼 것이다.

포세이돈은 스토리와 배역 모두 흠잡을 데 없고, 전개 역시 군더더기 없이 긴박함과 쉬어갈 곳을 잘 맞춰서 그 강약 조절에 저절로 몰입이 되는 편이었다. 다만 흠이라면 상황과 너무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BGM이 문제였다. 애초에 SBS에서 방영할 계획이었던 것이 다소 갑작스럽게 KBS로 편성이 바뀌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OST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라 빠른 시일 내에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점만 빼놓는다면 포세이돈은 최초의 해양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주연진의 구성도 좋지만 수사물인 이상 주연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범인의 카리스마인데 아직 베일에 가려진 최희곤은 캐스팅조차 숨기고 있지만 그 아래 중간보스인 신천 뽀빠이나 안동출 등은 악역의 기대감이 넘치는 배우들이다. 그러나 이성재를 중심으로 한 해경 특수수사대 CGI9과 흑사회의 무게 균형이 맞는 것에 대한 최종 확인은 최고 보스 최희곤이 등장한 이후가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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