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좌파세력 척결' 발언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김대중, 노무현 추종세력들이 다수 야당, 정부조직, 권력기관, 언론사,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주요 자리에 광범위하게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비슷한 발언을 이어가며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 조선일보 3월 12일자 3면
이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속내에 KBS 사장 교체에 대한 의도가 있다고 보고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해묵은 색깔론에 청와대 격려, 조중동 화답"

한국PD연합회(회장 양승동)는 13일 성명을 내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좌파정권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이라며 해묵은 색깔론의 칼을 뽑아 들고 이어서 청와대는 이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이명박 정부의 신임 장관들은 청와대의 격려에 화답이라도 하듯 연일 '노무현 사람 나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연일 지면에 옮기느라 우리사회의 중요한 의제들은 다 내팽개치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5년 동안 분탕질할 대한민국이 걱정스럽다"고 개탄했다.

▲ 한겨레 3월 12일자 4면
PD연합회는 이어 "이 논란의 시작이자 핵심이 공영방송 KBS 사장의 교체에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며 "거대자본의 광고중단과 손해배상 소송에 이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비판적 여론과 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공영방송을 민영화함으로써 자본의 손으로 빌려 다시 권력의 품으로 두려는 음모도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PD연합회는 "도무지 그 자격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임명 강행은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고, 그 와중에 '색깔·코드 인사의 인적 청산'이 다시 불거졌다"며 "언론 플레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무모한 여론몰이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KBS 경영협회, 기자협회, 기술인협회, 아나운서협회, 카메라감독협회, PD협회 등 직능단체들도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공공기관장의 임기보장은 정치적인 중립성과 사회적 균형, 공공기관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쉽게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우리사회가 마련해준 제도적 틀"이라며 "특히 KBS의 경우,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라는 불명예를 떨치고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잘 나가던 인사 몇몇이 밀실에 앉아 친소관계에 따라 장기 두듯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며 "한나라당이 아직도 대선 승리에 도취돼 '착각'와 '오만' 속에서 케케묵은 정신자세로 총선에 임한다면 국민의 엄한 시선이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어제(11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의 발언 내용을 즉각 취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공공기관장 임기보장은 정치적 중립성, 일관된 정책 추진 위한 제도적 틀"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2일 논평을 내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은 한마디로 '언론계,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우리 사람으로 채울 테니 다 나가라'는 말"이라며 "백번 양보해 정부조직과 권력기관을 논외로 한다 해도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이 왜 정권에 따라 '인적청산'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독립성이 생명이자 임기가 보장된 언론사, 방송사 임원도 자신들과 친한 사람들만 앉히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 한겨레 3월 12일자 3면
민언련은 또한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을 옮기기에 바쁜 보수신문들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안 대표의 발언이 나온 하루 뒤인 12일, 조선일보는 1면 <"각계 요직의 구정권 인사들 사퇴해야">와 3면 <정권은 바뀌었는데 '코드 인물'은 나 몰라라…> 등에서 여권이 청산 대상으로 보고 있는 '구정권 사람들'이 누구이고 '좌파법안'이 무엇인지 등을 상세히 '해설'했다. 동아와 중앙도 같은 날 2면 <"DJ-노 추종세력 사퇴해야">와 4면 <"DJ·노무현 정권 추종 세력 요직 남아 새정부 발목 잡아">에서 안 대표의 발언을 옮기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의 '찰떡궁합', 우리사회를 이념대립으로 몰아가는 정략적 발상"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일방적으로 좌파로 규정하고, 스스로 제1당이나 제1야당으로 참여해 만든 법과 제도를 부정", "우리 사회를 다시 '좌·우'의 이념 대립과 편가름, 지역주의 등의 '분열'로 몰아넣는 정략적 발상" 등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안상수 대표의 발언은 조선·동아 등 보수신문과의 '찰떡공조' 또는 '교감' 아래 나온 것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들 신문에서 비판적인 시각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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